호시담
땅에 밀착된 벽체들이 간결한 선을 그리며 지형을 따라 그저 툭툭 ‘놓여 있다’. 벽체를 이루는 무채색의 시멘트 벽돌은 단순한 직선들만큼이나 무표정하다. 아니, 검소하고 수수하며 꾸밈이 없다는 표현이 옳겠다. 형태도 색도 사심 없이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이라 주변의 수려한 풍광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산 속의 암자나 선방처럼 대자연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스스로는 작은 객으로 남겠다는 태도다. 그 모습에 주변의 대자연이 공간을 고요하고 풍요로운 안식처로 허락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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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혀진 집들은 임대용 숙박시설로 모두 일곱 채다. 그중 어느 한 채도 적층으로 지어진 것 없이 모두 지층에 낮게 깔려 있다. 집들은 단독주택처럼 각기 독립된 마당을 가지고 분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흩어진 모양새가 아니다. 경사진 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외곽의 경사면을 따라 옹기종기 앉혀져 있다. 어느 산골짝에서 만날 법한 작은 촌락처럼 모여 군락을 이루는 모습이 주어진 지형을 따라 움직이며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배치되어 있다.
전라남도 담양군에 위치한 대지는 앞으로 완만한 산 능선들이 화폭처럼 겹쳐져 있고, 그 너머로 남도의 명산 무등산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뒤로도 장쾌하게 펼쳐져 있는 추월산을 멀지 않은 거리에 등지고 있다. 볕이 맑고 따스한 데다 산자락에 부드럽게 감싸여 있는 곳이라 아늑한 기운이 전해진다. 집들은 이 멋진 풍광에서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비어 있는 채로 존재감이 최소화되기를 바란다. 여백이 크고 자기주장이 작은 공간은 눈과 몸을 쉬게 하고 마음에 여유와 안식을 주는 법이다. 디자인한 것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 속에 매우 세심한 디자인이 배어 있는 셈이다.
산자락과 능선을 따라 운무라도 짙게 깔리는 날이면 집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만다. 회색빛 시멘트벽돌이 녹아들어가 같이 운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볕이 짱짱하게 빛나는 날대로, 비가 오는 대로, 산자락이 오색 옷을 입는 대로, 함께 눈부시고 함께 젖으며 함께 단풍 들 수 있는 공간이다. 세월과 풍경의 유유자적한 흐름과 함께하며 변함없이 묵묵히 존재하는 집, 그 속에서 호시(好時)라는 이름 그대로 ‘좋은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이미 오랜 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온 풍경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작품명: 호시담 / 대지위치: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쌍태리 / 건축설계: 정재헌(경희대학교 건축학과), 모노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이문휘 / 설계기간: 2014.3~7 / 시공기간: 2014.5~2015.7 / 규모: 지상1층 / 높이: 3.35m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시멘트벽돌 / 내부마감: 도장 / 건축주: 최승훈, 강미진 / 구조설계: 기찬호 (en구조) / 대지면적: 2,032㎡ / 건축면적: 390㎡ / 연면적: 390㎡ / 건폐율: 19.2% / 용적률: 19.2% / 주차: 4대 / 사진: 박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