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재
Yooshinjae
유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Yooshin Architects & Engineers
공간 안에 시간을 가두어 두었던 모양이다. 흘러가지 못한 시간이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 온 흔적이 진하고 거칠게 남아 있다. 보살피고 가꾸고 다듬는 손길이 없어서 오히려 원래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가려진 채 적층되어 온 시간의 물증들이 말끔히 덜어 내지면서 비로소 시공간의 시작선이 드러나 있다. 건물은 그 지점을 정확히 그리고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는 건물로, ㈜유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로 사용하기 위해 10개월여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8월에 입주한 업무공간이다.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인 ㈜유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은 곳곳의 모습들이 설명하는 대로 나이가 상당히 많다. 거의 100여 년 전에 가까운 일제 강점기인 1926년 6월 23일이 그 준공일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 권리가 귀속된 뒤, 1975년 3월 4일 ㈜유신설계공단의 소유가 된 기록이 남아 있다. ㈜유신이 사옥을 역삼동으로 이전하면서 30년 가까이 문서보관소로만 사용되어 오다가 디자인 스튜디오로 변신이 이루어진 것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건물이 지어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그대로다. 노화 혹은 노후라기보다는 공간의 연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건물을 경계 짓는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저층부의 오래된 벽돌이 금방이라도 부서져 떨어질 것만 같다. 고르지 않은 땅에 깊숙이 박혀 있는 바위들 사이로 콘크리트와 흙바닥이 무심하게 뒤엉켜 있고, 촌스러운 타일로 가려진 현관 계단 위로 사각형의 캐노피가 옹색하게 튀어나와 있다. 출생을 알 길 어려운 입체적인 백색 기둥이 캐노피를 떠받치며 모던한 현관문을 프레임 짓고 있다.
오래도록 모진 풍파에 견뎌온 표정은 건물 안팎이 동일하다.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목재 천장과 상량문, 일부가 부서지고 떨어져 내린 벽면, 물이 들이쳐 곰팡이가 일었다 지워진 흔적, 공간은 지난한 세월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역사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의 아이덴티티가 퇴색되지 않도록, 나아가 건축 유산이 복원되도록 조심스러운 행보가 이루어졌음이 느껴진다.
과거의 건축 언어, 그 시절의 시공법과 재료,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개조나 변화 등의 흔적을 애써 지우거나 감추지 않고 있다. 헐거나 새로 지어진 곳, 특별히 변경된 곳도 없다. 건물 외벽에 아담한 문패를 거는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에 내재된 역사성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을 것 같다. 건물이 내포하고 있는 존엄성을 회복하고, 이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연륜 있는 공간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고 있다.
작품명: 유신재 /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96길 11 / 설계자: (주)유신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건축주: (주)유신 / 시공자: 라온랩 / 용도: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 / 구조: 연와조, 철근콘크리트 구조, 목조지붕트러스조 / 규모: 지하1층, 지상2층 / 대지면적: 533.60m² / 건축면적: 239.46m² / 연면적: 529.46m² / 건폐율: 44.97% / 용적률: 88.94% / 완공: 2021년 / 사진: 이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