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집
쌓아올려진 벽돌처럼 집은 차곡차곡 겹을 두고 감추어져 있다. 우둘투둘한 질감이 육안으로 만져지는 외벽 너머의 한 그루 나무가 그곳에 마당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너머 다시 벽돌 벽이 한 켜, 또 그 너머 솟아 있는 나무의 끄트머리가 또 하나의 마당을 설명한다. 그 안쪽 어느 쯤엔가 집이 자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시의 경계에 위치하는 집터 주변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이웃한 옆집과 담장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낮은 구릉이 깎여 나가고 자연스레 나 있던 골목길이 직선으로 넓어지고 반듯하게 포장되는 중이었다. 집터 뒤쪽에는 커다란 건물이 올라갈 준비가 한창이었고, 집 앞의 논은 공터로 휑하게 남겨진 모습이었다. 급작스러운 변화에도 터와 동네를 기억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방죽과 오래된 왕버들이다.
일종의 ‘과정의 풍경’이 만들어 내는 어수선함 속에 외롭게 남아 있는 오래된 풍경과 관계 맺는 일에, 집은 집중하고 있다. 예전 동네의 여느 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지막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앉혀진 이유다. 동시에 집은 또한,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일상생활이 보호되기를 바라고 있다. 오래된 것들과의 대화와 사생활 보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도심형 한옥의 형태와 구조에서 차용하고 있다.
일상이 이루어지는 본채는 ㄷ자형의 수평 공간, 즉 단층으로 펼쳐져 있다. 기와지붕 대신 반쪽 박공지붕, 목재와 흙 대신 전벽돌 마감, 툇마루 대신 지면에 깔린 낮은 노출콘크리트 반석, 한지를 펴 바른 듯한 격자무늬 창, 재료를 달리하고 형태가 현대적이지만 단아하고 정갈한 한옥의 풍모를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지붕은 마당으로만 기울어진 반쪽 모양의 박공이다. 외부에서는 차분하게 쌓아올려진 전벽돌의 면이 벽처럼 세워져 보일 뿐이다. 낮은 외관과 한쪽으로만 쏠린 반쪽 박공지붕 덕분에 집 한가운데 자리하는 마당 안으로 하늘과 빛과 주변의 풍광이 마치 더 수월하게 더 깊게 쓸려 담겨지는 느낌이다.
손님방 혹은 가족실처럼 사용할 목적으로 세워진 별채는 본채와 달리 수직 공간이다. 외부와 이웃으로부터 안마당과 본채를 적절히 가리는 경계가 된다. 도로와 접하는 진입부의 주차장 역시 높지 않은 담장과 이어져 분명한 경계를 만들고 있다.
채와 담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나누는 동시에 마당을 매개로 또 연결되어 있는 집이다. 과거 동네의 좁다란 골목길 같은 이동 통로와 흩어져 있는 마당은 동네 어귀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왕버들처럼 오래된 풍경을 두고두고 추억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작품명: 왕버들집 / 설계: 정재헌(경희대학교 건축학과) + 모노건축사사무소 / 설계담당: 김정호 /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 용도: 단독주택 / 대지면적: 787㎡ / 건축면적: 236.44㎡ / 연면적: 258.63㎡ / 규모: 지상2층 / 주차: 2대 / 높이: 7.2m / 건폐율: 30.04% / 용적률: 28.06%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전벽돌, 이빼목 /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페인트 / 구조설계: 기찬호 (en구조) / 시공: (주)엔도종합건설 / 기계설계: (주)성도엔지니어링 / 전기설계: (주)성도엔지니어링 / 조경: 김용택 (knl) / 조명: 두오모(조명) / 창호: 이건시스템창호 / 문: 메탈게이트(대문) / 기타 가구: 라르마(가구) / 바닥 마감: 지복득마루(마루) / 외부 마감: 일신석재(석재) / 설계기간: 2016.3~2016.9 / 시공기간: 2016.10~2017.12 / 준공: 2018.1 / 건축주: 이상옥 / 사진: 황규백(드론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