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
한국 현대 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김중업의 ‘삼일빌딩’ 앞으로, 저 멀리서부터 뻗어온 ‘청계고가도로’가 지나간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러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근 과거의 이미지, 7~80년대 한국의 개발주의적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사진은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의 표지다.
저자는 표지 사진으로 대변되는 20세기 후반의 한국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때로는 턱없이 부족한 재료와 공법으로 현대 모더니즘 건축을 좇으며, 때로는 과거 기와지붕으로 표상되는 한국성을 강요받으며, 이상과 현실 두 양극을 끊임없이 오가야 했다고. 때문에 온전한 건축을 상정하고 한국의 사정을 비판하기보다는 지난 세기 한국에서 건축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여러 희미한 흔적들을 통해 거꾸로 건축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책은 8개의 챕터로 나누어 발전의 파고 속에서 한국 건축이 남긴 흔적을 추적해 간다.
1장 “예술이 되기를 바란 건축”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5년, 새로 지어지는 건물 자체가 귀했던 시절, ‘건축계’라 불릴 만한 영역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건축이 국전에 편입된 1955년부터 독자적인 동력을 갖추고 대한민국건축대전을 열게 된 1982년까지를 되돌아보며, 건축을 통해 ‘국가 재건 사업, 더 정확히는 사업의 이미지를 홍보’하길 바랐던 국가와 스스로 예술 장르로 인식되길 바랐던 건축의 얽힘을 짚어본다.
다음 장에서는 ‘공간’의 창간과 그 배후에 드리워진 국가의 그림자를 함께 다루는가 하면, 1960년대 중후반, 건축이 마주쳐야 했던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살피기도 한다. 특히, 1966년 이뤄진 종합박물관 현상 설계와 1967년 시행된 정부종합청사 현상 설계 과정을 예로 들며, 종합박물관 현상 설계가 강박적인 ‘한국성’에 대한 논의를 대표한다면, 고층 오피스 건물인 정부종합청사에는 한국 현대 건축이 마주쳐야 했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이후로도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운동의 열기와 함께 등장한 청건협, 수건협 등이 권력과 자본에 맞서 건축의 사회적 실천을 촉구했으나, 거세게 밀려오는 자본의 물결 앞에서 결국 사그라들고 만 사연과, 1990년대 한국 현대 건축에서는 처음으로 내부에서 건축의 의미를 사유하길 요청한 4.3그룹까지 순차적으로 소개하며, 지나간 발자취를 세심하게 되짚어 본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역사를 추적하듯, 기록으로 남겨질 21세기 건축은 어떤 단어로 축약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될지, 이 책과 함께 현재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