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콤 시티
Welcomm City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 IROJE Architects & Planners
육중한 콘크리트 포디엄 위에 내후성강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상자가 띄엄띄엄 서 있다. 자세히 보면, 포디엄의 윤곽이 그대로 연장된 하나의 상자인 것도 같다. 지우개로 지우듯 상자의 일부가 수직으로 덜어져 나가서 세 개의 보이드가 만들어져 있다.
콘크리트와 철은 그것이 주는 무게감으로 쉽게 움직임이 느껴질 리 없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전면에서 마주하는 건물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이다. 익숙하지 않다. 마치 무거움이 가볍게 움직이는 듯한 장면은 육중함 사이를 흐르는 풍경들 때문일 것이다. 건물을 관통하여 열려 있는 보이드에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풍경이 담긴다. 뒤편의 주택들을 안기도 하고 하늘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구름과 안개가 허공을 채우기도 한다. 보이드를 찾은 발길들이 나무 바닥에 삼삼오오 걸터앉아 자연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뒤편의 작은 연립주택들은 이 공간으로 인해 햇볕도 받고 바람도 안으며 시각도 열린다. 건축의 파사드는 건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세하게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진 세 개의 보이드를 타고 흐르며 변화하는 풍경으로 완성되고 있다.
서울 장충동에 자리한 이 건물은 원래 ‘웰콤’이라는 광고회사 사옥이었으나 현재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의 사옥으로 변경되었다. 그 업무 특성이 고려되어 포디엄 내부에는 리셉션, 일반 사무실,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공간, 외부인도 접근 가능한 전시장과 카페 등이 구성되어 있다. 상부에 수직으로 솟아 있는 코르텐 상자는 업무공간이다.
건축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코르텐 상자에 나 있는 출입구들은 출구를 위한 통로가 아니라 내외부 공간을 가르는 것들이라 초행이라면 자칫 출구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부인가 하면 때로는 외부이고 외부인가 하면 때로는 내부가 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소요하게 되는 이유다. 다만 나무 바닥재가 깔린 부분이 통로이므로 이를 따라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
포디엄을 이루고 있는 노출콘크리트 외에 건축가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소재가 소개되고 있으니, 상부 상자를 구성하는 코르텐이다. 원래는 도장이 어려운 교량을 위해 만들어진 강철로, 공기에 노출되어도 잘 부식되지 않는 내후성강이다. 약 5년에 걸쳐 일정량으로 부식되는 외피가 스스로 막을 형성하여 재료의 강성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킨다. 뛰어난 내구성과 더불어 높이 평가 받는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부식되어 가는 색채의 아름다움이다.
단순한 외장재의 순도가 더욱 진하고 매끈하게 다가오는 것은 창틀로 인해 건물의 외곽선이 변형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창틀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창문에 반사되는 바깥 풍경은 마치 콘크리트 면에 혹은 코르텐 철판 면에 프린트된 장면처럼 다가온다. 밤이 되면 반대로, 건물 안의 풍경이 투시되면서 바깥 풍경을 향해 화답한다.
단단한 토대 위에서 건축들이 어우러지고, 미로 같은 길이 그들을 잇는다. 건축과 건축 사이 도시의 풍경이 흐르며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천 평의 대지 위에서는, 아니 포디엄 위에서는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도시의 어법이 전시되고 있는 중이다.
작품명: 웰콤시티 / 위치: 서울 장충동 / 설계: 승효상 / 시공: 삼협종합건설 / 대지면적: 1,253m² / 건축면적: 745m² / 연면적: 3,417m²/ 완공년도: 1999년 / 사진: Osamu Mur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