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구 커뮤니티센터
The Je Jung-Gu Community Center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 IROJE Architects & Planners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박공지붕의 집이다. 단층의 아담한 높이로, 두 채가 마치 손을 맞잡고 있기라도 하듯 사이좋게 연결되어 앉아 있다. 수목이 그들을 둘러싼 모습이 집과 숲이 조우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집과 집 사이에는 안마당이 자리하고, 그 사이로 멀리 산도 보이고 가까이 저수지도 보인다. 휑하니 열린 풍경이 아니라서 아늑하고 평온한 감성이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고성군 대가면의 대가 저수지에 면해 있는 공원 내에 위치한다. 도시 빈민의 생존권과 인권 보호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인권운동가 제정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커뮤니티 센터다.
주민들과 방문객이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평소에 ‘가짐 없는 자유’를 이야기하며, 여러 사람과 더불어 비우고 나누는 청빈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실천해 온 선생의 삶을 물리적 공간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각 개인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에 대해 깊이 묵상하던 선생을 기억하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근본적 건축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고, 멋진 독채의 건물이 아니라 소박한 모양새의 두 채와 부속시설들이 어우러져 공동체의 연대를 은유한다는 점도 그러하다.
두 채의 집은 강의실과 전시실 그리고 북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두 집 사이의 마당에는 박공지붕의 집을 형상화한 정자가 자리하는데, 사람들을 늘 환대하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장치다. 입구의 마당 가까이에는 묵상을 위한 탑이 세워져 있다. 선생이 늘 기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기린 것이다. 단순한 건물 하나가 아니라, 작지만 다수의 시설이 어우러진 하나의 작은 마을로 존재하는 셈이다.
집 주변의 숲을 거닐다 문득문득 만나게 되는 선생의 모습도 반갑고 인상적이다. 미술가 임옥상 선생의 작품으로 빚어진 동상들이다. 어떤 곳에서는 방문객을 환대하는 모습으로, 어떤 곳에서는 깊이 사색하는 모습으로, 혹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선생을 대면하게 된다.
집과 정자와 탑은 모두 내후성강판으로 마감되어 있다. 5년 동안만 녹이 슬고 이후에는 녹슨 피막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재료다. 피막의 색이 변해가는 5년여의 시간 동안 집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시간의 흐름을 스스로 기록해 나갈 것이다. 결국에는 암적색으로 변하는 표면은 그간의 시간을 기억하는 장치이자, 제정구 선생의 생전을 기록하고 되새기는 상징적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물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짐 없는 큰 자유’에 관한 선생의 정신과 우리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상기시켜 준다.
작품명: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 위치: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 304외 11필지 / 설계: 승효상, 이동수-(주)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 엄기훈-EM건축사사무소 / 프로젝트팀: 김기원, 김수진, 김준영 / 건축주: 경상남도 고성군 / 용도지역: 보전관리지역 /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 대지면적: 19,892.6m² / 건축면적: 454.93m²/ 연면적: 449.38m² / 건폐율: 2.29% / 용적률: 2.26% / 규모: 지상 1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조경설계: 임옥상/ 시공: 김철기-(주)세움건축 / 감리: 박광문-고성건축사사무소 / 외장재: 내후성강판, 로이복층유리 / 설계기간: 2019.6~2020.2 / 시공기간: 2020.3~2021.1/ 사진: 신경섭, 안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