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홀, Making Architecture

상상하고 그린다. 그림에 뼈대를 심는다. 종이 위의 그림을 땅 위로 옮긴다. 이렇게 또 하나의 건축물이 세상에 등장한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면 일련의 이 과정은 더 촘촘하게 분화되고, 각 단계에 걸리는 시간이나 투입 비용도 규모에 비례해 증가한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얼마나 큰 건물이건,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어야 하는 건물이건, 모든 건물은 창작자의 머릿속을 부유하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축가, 스티븐 홀의 건축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스티븐 홀Steven Holl: Making Architecture’ 전이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숭실대학교에서 열렸다. 뉴욕 사무엘 도르스키 미술관Samuel Dorsky Museum of Art에서 기획한 스티븐 홀 개인전의 첫 해외 순회전으로, 우리 시대 거장의 철학과 작업 방식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답게 전시 기간 내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전시는 Thinking, Building, Reflecting, 총 세 파트로 구성된다. 100여 점의 수채화와 드로잉, 모형 등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다양한 영감들이 어떻게 건축적 아이디어로 진화되는지, 그 아이디어는 어떤 과정을 거쳐 건물이라는 실체로 구현되는지 살펴보는가 하면, 스티븐 홀이 주체 혹은 객체가 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의 건축을 되짚어보기도 한다.

 

“A beginning point, an inspiration point – a heuristic device.”

스티븐 홀의 모든 프로젝트는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좋은 개념은 좋은 디자인과 공간을 끌어낸다고 믿으며, 좋은 개념을 얻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 땅, 역사, 문화 같은 거시적 요소는 물론, 프로그램이나 재료 등의 건축적 이슈, 때로는 음악, 소설, 과학 이론 등 건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도 매력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곤 한다. ‘파트 1: Thinking’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생각의 씨앗과, 그 씨앗을 뿌리고 싹 틔우는 방법이 소개된다.

Thinking 파트에 배치된 여섯 개의 테이블에는 각각 십여 개 남짓의 스케치와 다이어그램, 컨셉 모형 등이 놓여있다. 십중팔구는 프로젝트별로 자료를 모아둔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테이블마다 의외의 주제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Interdisciplinary Spaces and Social Condenser’, ‘Abstraction, Color, Music’, ‘water, Light, Psychological Space’ ‘Subtractive Additive’ ‘Mind Body’ ‘Materiality, Site, Space, Porosity’. 그에게 영감을 주는 대상의 범주만큼이나 폭넓은 주제들이다. 각 주제 하에 모인 다양한 프로젝트의 작업물들은 색이나 음악처럼 비물질적인 것을 건축적 아이디어로 전환하고, 조각가처럼 어떤 요소들을 더하고 빼가면서 공간을 빚어내며, 물과 빛을 이용해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스티븐 홀만의 방식을 보여준다. 사람을 모으고 일상을 풍요롭게 변화시키는 공공공간을 소개하며,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수백 장의 스케치 중 한 장, 수십 개의 컨셉 모형 중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하지만 파트1을 채운 작업물들을 둘러보고 나면, 작은 노트에 그린 그림 하나조차도 영감을 개념화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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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the Intangible and the Tangible”

스티븐 홀의 공간은 풍성하다. 빛이, 색이, 공간의 질감이 풍성하다. 그리고 이는 풍성한 경험들을 가능케 한다.
‘파트2: Building’에서는 큰 스케일의 모형을 통해, 파트1에서 발견한 ‘개념’들을 어떻게 실제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확장하는지 보여준다.

Thinking 파트의 테이블들을 순차적으로 살피며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Building 파트에 접어들게 된다. 설계의 과정이 그러하듯, 개념과 구축도 연속 선상에 있음을 암시하는 듯한 배치다.
Thinking 파트가 6개의 테이블로 구성된다면, Building 파트는 13개의 모형으로 이뤄진다. 다만 여기서는 각각의 전시물을 아우르는 주제보다는 개별 모형, 그 자체에 주목하기를 권한다. 이때 전시물이 놓인 테이블은 관객들의 시선을 영리하게 조율하는 장치의 역할을 한다. 파트1의 테이블은 무릎 정도의 높이이므로 관객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전시품을 내려다보게 된다. 스케치와 모형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테이블 전체가 말하는 바를 먼저 읽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파트2의 모형 스탠드는 허리, 혹은 가슴 높이로, 관객들의 눈길은 자연히 눈높이에 위치한 모형으로 향하며, 몸을 기울여 모형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 건물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말라위 도서관(Malawi Library)에서는 단면 모형으로 동선을 구성하고, 뉴욕 라인백 주택(Ex of In House)에서는 기하학적인 나무 모형을 통해 내부 공간의 볼륨감을 연구한다. 진행률 50%가량의 모형으로 디자인을 구체화하는가 하면, 100% 완성된 최종 모형으로 의도한 경험을 검증하기도 한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살피는 직접적 인지의 과정을 통해, 그 공간에서의 경험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가는 것이다. 스티븐 홀이 여전히 큰 스케일의 모형에, 그리고 그 모형으로 하는 실험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It is not about the finished.”

‘파트 3: Reflecting’은 전시장 입구 뒤편에 마련된 독립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그와 그의 프로젝트에 관한 다큐멘터리, 전시 도록, 단행본, 그의 프로젝트가 게재된 잡지 등, 스티븐 홀을 주제로 한 다양한 유형의 기록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파트다.

1970년대 후반의 출간물부터 최근의 출간물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만큼, 과거의 스티븐 홀과 지금의 스티븐 홀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티븐 홀의 건축을 대변하던 키워드가 유형, 현상, 관계 설정 등의 건축적 영역에서 도시적 영역으로 점차 확장되어 온 것을 감지할 수 있으며, 자기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다큐멘터리에서는 건축물이 완성된 이후의 사고까지도 섬세하게 다듬어가는 모습에서 여전히 존경받는 거장다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Reflecting 파트가 전시장 내에서는 앞의 두 파트보다 이전에 위치한다는 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남긴다. 건축가는 Thinking, Building, Reflecting의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전시 공간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그의 대표작이 아닌 근작으로만 구성됐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의 건축 또한 이 같은 생각의 흐름을 거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스티븐 홀은 이번 전시와 함께 개최된 강좌에서 “건축의 진정한 의의는 결과물이 아닌 설계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며 미래의 건축계를 이끌 학생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전한 바 있다. 한발 앞서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 건축가의 당부처럼 과정의 의미를 깨닫는 건축학도들이 늘어나기를, 그리고 그들 또한 언젠가는 오늘의 스티븐 홀처럼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글/ 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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