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슴당인
주변 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도 홀로 높이 치솟아 하늘과 마주한다. 좁은 도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으면서도 길과 동네를 향해 수줍게 손길을 내민다. 멀리서는 무뚝뚝하게 닫힌 표정 같다가도 다가가 보면 마음을 활짝 열어 놓고 먼저 말을 건네고 있다.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골목길 중간쯤에 위치한다. 벽돌을 주재료로 하는 저층 주거용 건물이 거리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대지는 폭 5.6미터, 깊이 17미터의 좁고 긴 이형 부지로 3미터 도로에 접해 있다. 오래된 주거 지역 내에 과거부터 공터로 남아 있던 곳이다. 주변은 2~4층 규모의 주거 시설이 밀집해 있고, 최근에는 카페와 디자인 사무실 등이 하나둘씩 입주하고 있다. 전면은 남동쪽을 향하고, 나머지 3면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배면과 부지 우측면은 정북 방향 일조 사선의 영향을 받는다. 대지는 편평하지만 북쪽으로는 완만한 언덕이 자리한다. 전면에는 현재 지하화가 완성된 당인리발전소가 위치하고, 4층 높이로 올라서면 보담 너머로 일부 노출된 지상 구조물과 한강이 보인다.
주거 지역에서는 모든 건축물에 정북 방향 일조권 사선이 적용된다. 이 제한이 건축물의 최대 볼륨과 허용 가능한 최외곽선을 규정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법적 제한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분에 소슴당인의 볼륨이 보다 특징적으로 완성되고 있다. 정북 방향 사선 제한 면과 건물의 입면이 평행을 유지한다. 이렇게 뻗어나간 사면과 수직의 벽이 만나는 지점까지 방향성이 유지되고 끊김 없이 연장된 결과로, 솟은 볼륨과 뾰족한 내부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면 도로가 협소하여 접근이 어렵고, 대지의 형상 자체도 좁고 길다. 게다가 골목길 한 면은 당인리발전소의 담이 가로막고, 다른 한 면은 줄지어 서 있는 다세대 및 다가구 주택들의 외벽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공원 같은 공공의 소통 공간은 찾아 보기 어렵다. 전면 도로에서 후퇴시킨 것은 이런 형편을 고려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로에 숨길을 트고, 계단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외부에서 수평으로 이어져 들어오는 길의 흐름이 건물을 타고 수직으로 연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골목길은 소슴당인이 대화 나누기 원하는 주요 대상이다. 가로와 면한 입면이 넓은 창으로 열려 있어 골목길과 유연하고 활기찬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길과 연계되는 계단부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철재 펜스로 개방감 있게 처리되어 소통의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각 및 물리적으로 열려 있는 창과 동선 모두 밝은 가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는 모습이다.
높고 넓은 전면 창의 경우, 여름철 일사량의 부하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하여 창을 둘러싸고 있는 입면의 가장자리를 창보다 앞으로 더 돌출시켜 계절에 따른 일사량이 자연스럽게 조절되도록 하고 있다. 입면의 돌출된 부분 자체가 처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가 있긴 하지만 합정동은 절두산 순교 성지, 교보문고와 같은 역사 및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들이 많은 장소다. 그런 의미에서 옛 풍경과 조건을 수용하고 친밀하게 스며드는 도시 혹은 골목길 재생의 모델을 소슴당인을 통해 발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작품명: 소슴당인 /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81-47 / 설계: 에스엠엘 건축사사무소(임승모), 에이티쿠움파트너스(김종석) / 디자인팀: 김재일, 이주현, 정제윤 / 시공: 에이티쿠움파트너스 / 용도: 근린생활시설 / 대지면적: 104.43m² / 건축면적: 54.53m² / 연면적: 152.43m² / 건폐율: 52.22% / 용적률: 145.96% / 규모: 지상4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투명복층유리 / 내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콘트리트 폴리싱, 수성페인트 / 설계기간 : 2019. 11. ~ 2020. 3. / 시공기간 : 2020. 7. ~ 2021. 7. / 사진: 신경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