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묘역, ‘소석원(小石園)’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 Iroje architects & planners
봉하마을은 참 아름답다. 봉화산은 고작 140m 남짓한 높이지만, 오랫동안 백두대간을 달려 내려와 앉은 어엿한 풍모가 남아 있으며, 주변은 낙동강 유역의 평탄습지여서 그 가운데 솟아난 기세가 자못 위엄 있기까지 하다. 그 앞을 유장하게 뻗어 화포천 속에서 꿈틀대는 뱀산은 또 어떠하며, 드넓은 논밭이 콜라주로 펼쳐져 있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변화무쌍하면서도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소석원은 그 소박하고 평화로운 장면을 날마다 누리던 고인도, 고인을 찾는 방문객들도 여전히 계속해서 누리기를 염원하고 기념하는 장소다.
봉화산 봉화산 사자바위에 올라서면, 멀리서부터 구비 치며 마을을 엮어 들어오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의 일직선상에 평지의 삼각형 꼭짓점이 맞닿고, 이내 봉화산으로 연결된다. 그야말로 마을과 자연을, 현실과 영원을 연결하는 매개의 영역 같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묘역의 위치로 적격이다. 그 흐름도, 땅 안으로 흘러드는 두 개의 물줄기도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평지다.
사실, 평지의 묘역은 생소하다. 하지만 ‘괜찮다’고, 오히려 ‘낫다’고, 종묘의 월대가 답을 해주고 있다.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신 종묘는 무려 6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년 5월이면 종묘제례가 이루어지는 여전히 기능하는 장소다. 그리고 이러한 종묘의 본질은 정전 앞, 비운 공간이 주는 비 물질의 아름다움에 있다. 일상의 높이보다는 1m 정도 돋아 있으나, 신위가 모셔진 곳으로부터는 1.5m가량 내려와 있는 공간이자, 산 자와 죽은 자가 본원의 위치를 떠나 서로 만나는 중간영역. 그래서 자못 경건하며 침묵이 전체를 지배하는 영혼의 공간, 바로 그 월대 같은 광장의 묘역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는 장소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경건함을 유지하는 기념소이니 ‘바보 노무현’을 기리기에 가장 적확한 방법이다.
봉화산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한 삼각형의 땅. 사자바위의 압도적인 모습 탓에 공간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길이 60m의 내후성 강판 벽을 설치함으로써 바깥 영역과 경계를 이루며 내부 공간의 존재감을 확보했다. 이는 전통묘역 능침 주변의 곡장(曲墻)에 해당한다. 특수합금인 내후성 강판은 5년 정도 산화된 표면의 녹이 피막이 되어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하는 철재다. 세월을 따라 색이 변해가는 재료의 특성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축적한다는 상징적이고 영구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일천 평 남짓한 삼각형 땅에는 두 개의 물줄기가 파여있다. 물줄기는 땅을 진입부, 배례부, 지석부의 세 부분으로 자연스레 나눈다. 전통 제례의 공간구성에도 합당한 형상이다.
묘역으로 걸음을 이끄는 광장 바닥에는 종묘의 월대가 그러하듯 박석들이 깔려 있다. 박석 하나하나에 국민들이 쓴 문구들이 새겨진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고인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절절한 구절보다 더 아름다운 비문을 쓸 수 없을 것이라던 황지우 선생의 탁견에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결과다. 덕분에 길과 광장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서가 될 수 있었다.
박석이 깔린 월대는 일상적 지면으로부터 1.5m 들어올려져 있다. 입구마당에 4개의 계단을 만들어 지면을 올리고, 거기에서 저 멀리 있는 지석을 내려보게 만든 다음, 서서히 월대 면을 내려가게 해서 중간 영역인 헌화 분향대에 이르면 지석은 다시 올려보게 된다. 지석을 가기 위해서는 다시 완만한 경사의 면을 올라야 하고, 묘에 참배를 마치고 돌아 보면 지면은 이제 부드러운 구릉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월대의 면은 수평이 아니라, 그 속에서 아주 다양한 높낮이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참배객의 동선을 유도하고 각 영역의 성격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묘역의 봉분함을 내후성 강판으로 덮고 그 위에 너럭바위 같은 큰 돌이 앉혀져 있다. 유홍준 교수가 제안한 남방식 고인돌 형식의 묘가 그리 표현된 것이다. 돌을 받치는 내후성 강판은 묘의 경계 부분에 세운 같은 재질의 벽체와 조화를 이룬다.
일천 평에 가까운 묘역이 고인의 마지막 소망인 ‘작은 비석 하나’에 반한다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묘 자체만으로는 5평이라 작다. 그것도 돌 하나가 얹혀 있을 뿐이어서 지극히 검소하다. 단, 묘를 한정하는 공간은 죽은 자를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산 자인 우리 모두를 위한 장소다. 광장이 존재하는 이유다. 평면의 광장이 주변의 산지와 농지로 확장되니 더욱 크게 체감된다. 그래서 작고 소박하지만 결코 누추하지 않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프로젝트: 소석원(小石園) / 위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25-10 / 설계: 승효상 – 이로재건축사사무소 / 대지면적: 3,505.61m² / 건축 내용 : 묘비, 코르텐강 벽, 연석, 천연 박석, 기증자 타일, 국기원, 헌화 제단, 의장석, 통제 장벽, 분지, 수로, 조명 기둥, 수로 조명, 스피커 / 용도: 묘역 / 설계: 2009.06-07 / 완공: 2010.05. / 사진: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