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건설된 하수종말처리시설이 시민들에게 물 재생의 가치를 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버려진 산업유산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기 위해 개최된 ‘청계하수역사체험관 설계공모’에서 ‘건축사사무소 토도’가 당선의 영예를 안게됐다.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일대에 위치한 ‘중랑물재생센터’는 1976년 준공된 국내 제1호 하수종말처리시설로, 지난 수십 년 간 서울시 10개구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와 12개구에서 발생하는 분뇨를 처리해왔다. 2007년 대대적인 시설현대화사업으로 지금은 하수처리 관련 시설은 모두 지하화됐고, 남은 지상 공간은 공원 및 체육시설 등 주민 친화적 시설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시설은 유입펌프장과 유입관로뿐이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와 함께 성장해 온 산업시설인만큼 그 역사적·장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이에 서울시는 남겨진 유입펌프장과 유입관로를 중심으로, 건축과 전시가 통합된 ‘청계하수역사체험관’을 조성키로 하고, 그 최적의 안을 선정하기 위해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공모는 2단계로 진행됐는데, 1차 공모에는 총 23개의 작품이 접수되어, 청계하수역사전시관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 심사진(이은경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강예린서울대학교, 권경은오피스경, 이소진아뜰리에 리옹 서울, 최윤희한국예술종합학교, 이소정예비심사위워느 건축사사무소 오비비에이)은 기존 시설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보전 방향에 대한 리모델링 전략, 물을 매개로하는 시퀀스를 갖는 체험 공간에 대한 독창적 아이디어, 옥외공간에 대응하는 증축부의 지역 연계성과 공공성의 확보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여 다섯 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1차 선정팀들은 한달 반의 준비기간을 거쳐 설계안을 디벨롭하였으며, 지난 11월 11일 PT발표와 질의응답 등으로 이뤄진 2단계 심사가 열렸다. 심사진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산업시설의 문화공간화 프로젝트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귀결됐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완결적 컨텐츠보다는 채워갈 여지와 가능성을 두었는가에 집중하여 제출작들을 평가했다. 그 결과 건축사사무소 토도의 안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당선안은 펌프장에 물을 채우고, 그 물이 다시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외부에 습윤지를 형성한다는 개념의 작품이다. ‘물’이라는 요소 자체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물을 담고 있는 공간’ 즉 건물 자체를 대상화 하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가장 극적인 동선을 만들어 건축공간 자체가 전시로 녹아들게 하고 있다.
심사진 역시 최소의 개입으로 대지에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간다는 개념이 시적이고 매력적이며, 이 시설의 복잡함을 강하고 단순한 일방향의 축성으로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당선작의 강점으로 꼽았다.
서울시와 당선팀은 내년까지 기본 및 실시설계를 마치고, 2023년 5월 개관을 목표로 후속작업을 진행해갈 예정이다. 자료제공 / 서울특별시
당선작
주.건축사사무소 토도
기존 하수펌프장은 철저하게 기능을 담기 위한 형태이다. 마치 기계와 같으며, 사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이런 하수펌프장의 작동시스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시설을 관통하면서 단면을 체험하도록 한다. 방문객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공간은 기계로 가득한 어두운 곳으로, 하부에 차 있는 물에 반사된 빛을 통해 이곳이 물과 관계 맺는 곳임을 인지시킨다. 다음으로 낡은 파이프들이 연속되어 놓여있는 좁고 높은 비례의 공간을 지나면 천장의 얇은 틈을 통해 한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공간을 만난다. 시간에 따라 다양한 빛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위아래로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곳에 서 있게 되는데, 하부에서 유입관로를 통해 올라오는 바람이 오감을 자극한다. 갈수록 좁아지게 계획환 유입관로는 긴장감을 증가시키고, 또한 단면의 차이를 이용해 압력을 만들어 공기의 흐름을 유도한다. 냄새를 수반하는 바람은 이곳이 물의 통로였음을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벽체를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주변 대지보다 낮은 레벨에서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차량기지의 신호소리,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이다. 완만한 경사지를 올라와 측면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방문자센터로 돌아오게 된다. 선택적인 체험을 제외하면 노약자, 장애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다.
2등
플로건축사사무소
하수역사체험관이 포함된 물체험공원은 시민들의 산책과 휴식이 가능한 일상 속 공간이다. 공원 중앙의 방문자 센터는 지형을 활용해 수평면 아래 위치시켜 체험의 시작을 알린다. 방문자 센터 앞에 펼쳐지는 하수처리장 전면 연못의 반사된 이미지는 기존 하수처리장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역사체험관 주변의 수공간은 일상의 공간과 체험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임과 동시에 둘을 공간적으로 거리는 두는 경계이다.
유압펌프장에서 물의 정화과정은 다양한 레벨과 크기의 공간을 통과하며 이루어졌다. 정화가 일어났던 공간들을 쫓아 경험할 수 있는 체험길을 제안한다. 기능적으로만 존재했던 공간들의 특성을 방문자가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연결하며 완만한 경사의 길은 서서히 수면 안으로 들어가 근대 도시를 지탱해 주던 숨겨져 있던 공간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3등
와이즈건축
역사적 가치를 지닌 최초의 하수처리장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전수보존하고, 물재생 경로를 재해석해 물과 연관된 다양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의 정원으로 재구성한다.
기존 하수처리장을 전유했던 물은 빛, 바람, 소리, 진동, 식물 등 다른 물성으로 치환시켜 청계하수역사체험관의 지속가능성을 높히고 관람자의 체험을 극대화한다.
하수역사체험관은 체험길과 생태길로 구성된다. 두 개의 길은 기존하수처리장과 증축공간을 잇고, 외부공간을 순환한 뒤, 옥상전망대로 연결된다. 체험관 외부공간은 물무늬,땅무늬,바람무늬지형으로 구성하여, 서울하수도과학관으로의 유입동선을 자연스레 체험관으로 유도한다.
사용연한이 끝난 최초 하수처리장은 최초 하수관로체험관이 된다. 가동을 시작한 1976년과 상부설비가 설치된 1991년을 기준연도로 보존한다. 기존하수처리장의 물재생 경로는 하수관로 체험길로, 기존하수처리장의 슬러지 인양설비와 이송경로는 식물로 채워진 생태길로 재생한다.
3등
주.범도시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이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규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변화를 담을 수 있는 단순한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만든다.
유입펌프장의 정면성과 땅의 컨텍스트를 고려하여, 새로 만들어지는 방문자센터와 기계실을 예전의 상징수 터에 배치한다. 후면에 위치하며 땅속에 묻힌 이 공간은 기존 펌프장 후면 벽체와의 사이에 보이드 공간을 만들며, 이 빈 공간은 박물관이 지향하는 바를 표방하게 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고 기억을 환기하는 이 리보이드 공간은 새로운 것과 오래됨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복층 구조로 만들어진 방문자센터와 하부 기계실 사이에 보이드 공간을 두어 두 공간을 연결하여 하나로 만든다. 박물관 내부와 전면의 외부공간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기계실의 장비들과 버려지는 물을 퍼 올려서 재활용하는 과정까지도 전시의 일부가 된다. 남아있는 도로들과 전나무 군락들을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동선과 공간을 만든다. 가장 낮은 부분인 전면의 바닥에 거울못을 만들어 오래된 펌프장의 모습을 비추어 기억하고 상상한다. 건축은 풍경의 일부가 되어간다.
3등
지요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