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길 기념관
KimOkGill Memorial Hall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 김인철 | Archium + In-Cheurl Kim
열여덟 평 남짓의 협소한 면적 안에 공간은 갇혀 있지 않다. 한 쪽은 막혀 있고 한 쪽은 열려 있는 벽들, 그 사이를 타고 공간이 흘러 들어가고 있고 또 새어 나가고 있다. 공간의 얼개가 되고 있는 벽은 틈을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나란히 도열해 있는 각기 다른 크기의 벽과 벽 사이의 틈으로 공간이 스며들거나 배어나가는 흐름을 통해 건축이 완성되는 원리다. 말하자면, 건축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풀려나 무한히 확장되는 모습이다. 당연히, 공간의 크기라는 개념도 없다. 점점 커지기도 하고 점점 작아지기도 하며 제 크기를 찾아 움직인다.
유리와 노출콘크리트, 보이는 물성은 이 두 가지가 전부다. 유리는 투명성으로 존재감을 스스로 감추고 있고, 회색 톤의 노출콘크리트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일정하게 낼 뿐이다. 이 외의 장식, 미학, 질량, 기질, 기능 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접근, 아니 극도로 절제된 이중주만을 고집스럽게 견지하고 있다. 평소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김옥길 여사의 생전을 회고해 볼 때, 노출콘크리트의 무채색이 전부라는 점은 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소한의 리듬이나 장식도 배제되고 어떤 비유클리드적 변주도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배가 된다.
천장과 지붕의 경계도 없다. 외부로 향한 유일한 통로인 창마저 벽들 사이를 유기시키는 틈새로 대체되고 있다. 전후방을 열어 둔 채 물리적 크기로 그러데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서 존재감을 가질 뿐, 사실 미완의 건축에 가깝다. 그마저도 작은 쪽에서 큰 쪽으로, 큰 에서 작은 쪽으로, 짧은 맥박의 흐름을 흘리다 만다. 미완의 건축, 절제된 기하학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실체로 인해 건축에 관한 개념을 의심받을 만하다. 단지 구조일 뿐인 건축을 제안하고 있고, 건축물이 실행되었다기보다는 실험되고 있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에 내재된 형이상학적 위상이 보다 깊이 있게 확인된다. 전후방으로 트인 벽과 벽 사이로 가로와 도시의 풍경이 드나들고 스쳐간다. 또한 벽들 사이의 투명한 유리 틈새로 하루해가 자유롭게 유입되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빛은 공간을 수사하고 장식하는 유일한 요소로서, 스며들기도 굴절되기도 번져나가기도 강렬하게 새기기도 하면서 각기 다른 농도와 모양으로 각기 다른 표정과 깊이를 공간에 연출해낸다.
밖에서는 그러데이션의 측면 벽들이 공간을 단절시키는 장치로 보이지만, 반대로 내부에서는 공간의 연속적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물리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 덕분에 안팎으로 공간이 이분화 되는 개념 또한 없애고 있다.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전후방으로 트인 틈을 따라 공간이 연속되어 흐르는 광경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도식화된 자폐적인 공간 개념으로부터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건축이 공간을 소유하지 않는다. 서두의 표현대로, 무한히 거듭되며 확장될 뿐이다.
작품명: 김옥길 기념관 / 설계: 김인철 + 아르키움 /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 92 / 지역: 일반주거지역 / 지구: 주차장정비지구 / 대지면적: 371.9m² / 건축면적: 62.64m² / 연면적: 212.69m² / 규모: 지하1층, 지상2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완공: 1999년 / 사진: 박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