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곡교회
부드럽고 야트막한 산 아래 기와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옅은 곡선의 지붕들이 만들어내는 그 풍경이 마치 잿빛 물결이 이는 것도 같다. 높다란 것은 하나도 없다. 가가호호 지붕도, 가가호호 황토 흙담도 하늘 아래 동네의 모든 것들이 나지막하다. 마을 언덕 위의 빨간색 종탑이 수월하게 눈에 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잿빛의 기와 물결을 좀더 밝혀 보려는 듯, 교회가 환하고 연한 노출콘크리트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통 가옥과는 다른 모습이다. 공간에 관한 전통이 답습을 통해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대로 흘러가며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레 공존하고 조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듯하다.
교회가 위치한 곳은 경북 영양의 주실마을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의 정상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기존 교회가 오랫동안 서 있었다. 교회 건물이 너무 낡기도 했고, 기와지붕을 가진 전통 한옥마을로 지정됨에 따라 마을 전체가 새롭게 단장되는 계기가 마련되면서 교회 역시 재건축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교회에 부여된 공공의 기능은 두 가지다. 지역민들을 위한 새로운 문화센터로서의 역할, 시인 조지훈을 기리며 마을을 순례하는 문학인들을 위한 마을 전체를 조망하는 전망대로서의 기능을 담는 것이다. 교회 앞에 나 있는 마당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그러해서다. 교회 내부로 진입하는 경사로가 마당을 경계 지으면서 나지막한 담장이 되어 주고 있다. 아담하고 아늑한 외부마당이 자연스레 만들어진 셈이다. 교인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나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들르고 모일 수 있는 교제의 광장이 될 것이다.
교회 건물은 마을보다 한층 높은 위치에, 마을보다 한층 밝은 무채색의 콘크리트 공간으로 들어 서 있다. 전통 가옥과 달리 형태도 지극히 현대적이다. 덕분에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소박한 크기와 형태임에도 마을 어느 장소에서나 눈에 띈다. 비스듬한 수직의 콘크리트 상자는 평화로운 주실마을 전체의 정수리를 은유하는 형상이자, 내부에는 높은 천장의 수직 공간을 마련해 준다.
천창을 타고 들어오는 태양빛이 예배당을 깊숙이 그리고 가득 채우는 모습으로 인해 작은 공간이지만 경건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예배당 뒤편으로 나 있는 계단실을 거쳐 옥상에 이른다. 이름 하여 ‘하늘 예배처’다. 이곳이 마을 전체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고풍스런 마을 순례의 정점이 된다. 이로써 교회는 새롭게 부여 받은 공공의 기능을 완수하며, 주실마을을 아우르고 있다.
작품명: 주곡교회 / 위치: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194-2 / 설계: 이은석 / 용도: 종교시설 / 대지면적: 721.00㎡ / 건축면적: 189.58㎡ / 연면적: 290.44㎡ / 규모: 지하 1층, 지상 1층 / 건폐율: 26.29% / 용적률: 26.29%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 준공: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