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합니까?’
지금 이 순간도 나름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간단한 이 두 가지 질문에는 버퍼링에 걸린 듯 대답을 머뭇거린다.
그런 이 시대의 직업인들에게 이 질문의 의미를 전하는 책이 출간됐다.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매거진 B’의 단행본 시리즈 ‘잡스(JOBS)’다.
브랜드의 역사, 철학, 감성 등, 한 브랜드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낸 ‘매거진 B’는 지난 8년 간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부터 도시까지,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전 세계 80여 개의 브랜드를 소개해 왔다. 그 여정을 통해 발견한 사실은 매력적인 브랜드에는 자신만의 직업의식을 지닌 매력적인 사람이 있고, 일에 대한 태도와 가치는 곧 브랜드의 철학과 정신으로 연결된다는 것.
이러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 기획된 ‘잡스’는 사람을 중심으로 일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집이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이 시대 직업인들의 입을 빌려, 세상의 많은 창의적 일이란 전문 지식이 아닌, 직업적 사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갖추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전한다.
에디터와 셰프에 이어 ‘잡스’에서 세 번째로 조명한 직업은 건축가다.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관점, 세상에 없던 조형물을 창조해내는 미적 관점,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를 그리는 인문학적 관점이 얽혀있는 ‘건축’. 그런 건축을 다루는 예술가이자 엔지니어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건축가들을 만나보고, 좋은 공간에서의 독자적인 경험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기를 들어본다.
영화감독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루카 구아다니노’, 영국의 미니멀리스트 건축가 ‘존 포슨’,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건축과 지역 재생 운동을 연결하는 ‘아시자와 게이지’, 프랑스 건축 스튜디오 시규의 공동창립자 ‘위고 아스’, 쌈지길과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건축가로 유명한 ‘최문규’, 전형적인 학교의 틀을 깬 동화고 삼각학교로 화제를 불러 모은 ‘네임리스 건축’, 한옥과 서양 건축 분야 양쪽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다양한 도서를 집필해온 글 쓰는 건축가 ‘황두진’, 공일스튜디오 대표 건축가로 일하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해온 ‘조재원’까지, 300여 페이지의 책에는 직업과 생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어 올린 국내외 여덟 건축가의 진솔한 얘기가 담겨 있다.
혹자는 경청이 건축가에게 꽤 중요한 자질이라 말한다. 자기표현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잘 듣기’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곰곰이 따져보면 잘 듣늗다는 것은 잘 말하고 잘 실행하기 위한 사전 단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덟 건축가의 내밀한 고백을 경청해 보자. 그 귀 기울임이 어떤 깨달음을 선사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