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루베, 샬롯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르 코르뷔지에.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 건축가와 디자이너 4인의 단체전이 헨리베글린 압구정 플랙쉽스토어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 L.993′에서 열린다.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L.993′ 개관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이 디자인한 가구들을 통해 네 작가의 디자인 세계를 조명해 본다.
2차세계대전 이후의 유랑민을 위해 설계한 장 프루베의 조립식 주택부터, 네 사람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40~60년대에 제작된 의자, 책장, 스툴, 테이블 등, 다양한 빈티지 가구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먼저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하나로 꼽히는 장 프루베Jean Prouve는 목재 가구가 주를 이루었던 당시, 금속을 가구에 이용하여 기술적, 구조적 혁신을 이끌어낸 실용주의 가구디자인의 선구자였다. 사회적인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던 탓에 항상 디자인의 역할을 고민하며, 미적이면서도 사회적 기능을 갖춘 작업을 다수 선보여 왔다.
전시장의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6×6 Demountable House’도 바로 프루베의 작품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쟁 유랑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조립식 주택인데, 가구부터 집까지 모든 것을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프루베의 신념을 담아 운반과 조립, 해체가 용이하고 저비용으로 지을 수 있다. 실로 이러한 임시 가옥은 유목 건축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샬롯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은 20세기 초중반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활약했던 1세대 여성 디자이너로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대표작인 ‘Nuage Bookshelf’를 만나볼 수 있다. 페리앙이 50년대 후반에 제작한 시리즈 중 하나로, 개별 주문을 통해 제작되어 각 피스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2단보다 3단이 더 희귀하게 여겨지며, 얼마나 다양한 색이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되고 있다.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 역시 당대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샬롯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수많은 프로젝트를 협업했다.
인도 찬디가르의 신도시 건설은 르 코르뷔지에와의 대표적인 공동 프로젝트로,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물의 내부에 비치할 여러가지 가구를 디자인한 결과물이 이른바 ‘찬디가르 퍼니쳐’다. 덥고 습한 인도지방의 기후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일반적인 천 대신 케인을 소재로 통풍이 잘 통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디자인한 책장과 의자가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근무했던 샬롯 페리앙과 사촌인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건축물의 내부를 구성할 가구를 직접 설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가구들은 그의 이름 철자를 따 LC를 붙인 이름으로 불리며, 금속관의 프레임에 쿠션을 올린 감각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LC체어 시리즈는 미드 센츄리의 모던 가구를 대표하는 암체어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디자인 가구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샬롯 페리앙과 협업한 코트 행어다.
전시는 6월 11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가구 디자인 선구자들의 빈티지 가구들을 통해, 20세기 전반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