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태우는 집
집 짓는 현장에서 쓴 아파트 탈출기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아보라면, 십중팔구는 ‘내 집 마련’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듯하다. 그런데 심지어 그 집이 내가 꿈꾸던 집, 내가 지은 집이기까지 하다면? 그 행복함과 만족감을 어찌 몇 마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툭하면 집 짓기 현장에 달려가느라 몸은 피곤하고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히느라 스트레스도 받았겠지만, 그러한 시간조차도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이지 않을까.
드림 하우스를 향한 여정의 설렘 앞에는 장사가 없다. 한평생 건축과 더불어 살아온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쑥을 태우는 집’은 국민대학교 박길룡 명예교수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경기도 이천에 자신의 집을 짓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평생을 건축 이론가이자 평론가로 활동해온 원로 교수의 집 짓기 책이라 하여 수업 시간에 교재로 쓸법한 전문 서적을 떠올리면 안 된다. 현장을 서성이다가 떠오른 집에 대한 단상들의 모음이며, 내 손으로 설계한 내 집 짓기의 즐거움이 묻어있는, 그러나 문학적 수사와 상징, 은유가 곁들여진 집짓기 에세이다.
책에는 겉보기에는 남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전원주택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특화된 맞춤형 집을 짓는 일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저자는 전원에 집을 지으면서 아파트 평면을 따라가는 전원주택을 못마땅해한다.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 전원에 어울리는 평면을 구성하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자신이 살 지역을 선택한 이유에서부터 땅을 고르고 집을 앉히는 방식, 집의 크기를 결정하는 일, 자연을 대하고 적응하는 방법 같은 커다란 담론부터, 가구나 조명, 담장과 대문 등 사소하게 혹은 무심코 혹은 습관적으로 지나칠 작은 일까지, 총 106개의 요소에 대한 생각들을 밝힌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지나치는 것까지 그 의미와 쓰임새 등에 대해 말하며 결코 사소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각 요소에 대해 모르면 건축가가 원하는 집이 되거나 공사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짓는 집 혹은 아파트같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적힌 내용이 보편적이거나 일반론적인 것은 아니다. 각 담론들에 대해 전통에서 연원을 밝히고 해외에서 사례를 가져오지만 전적으로 저자인 집주인의 개성이 넘치는 요소들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이러한 요소들을 집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집 이름인 ‘쑥을 태우는 집’ 의미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집은 ‘쑥을 태우는 집’이라 했다. 쑥은 매우 다양한 물상과 개념과 상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정화의 뜻으로 태우는 일과 쑥의 효용이 그러하다. 태우는 것, 비추거나 말리거나 사르는 것은 제사의 행위이다. 그러니까 播은 단지 태우는 일이 아니라 제의 같은 느낌이다. 쑥을 태우면 연기가 난다. 연기는 하늘로 날아올라 가니 하늘에 뭔가를 고하는 일이다. 그럴듯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집 짓기가 단순히 삶을 담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잠재된 가치를 일구어 지속적으로 공간과 사건을 익혀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전하는 집에 대한 혹은 집을 짓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집을 짓거나 살면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