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커뮤니티센터
건축물이라기보다 하나의 ‘길’로 서 있다. 널찍한 도로와 접한 마을 초입을 파수꾼처럼 지키면서 아래쪽 마을로 이끈다. 가파른 경사지를 데크를 통해 완만하고 안전하게 내려가도록 안내하는 모습이 친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지의 형상에 순응한 채 완성된 오브제를 고집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부지는 동서로 단차가 큰 두 도로 사이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헤이리 단지 전체를 순환하는 30m 너비의 주도로가 있고, 서쪽에는 6m 너비의 단지 내 도로가 자리한다. 동서 간 5m 정도 가파른 경사를 이루다가 평지를 형성하며 헤이리 마을과 만나는 형상이다. 주어진 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겸손하게 스며드는 태도, 그것이 손 타지 않은 녹지와 습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안과 밖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최소한의 구조체를 제안할 수 있었다. 지형의 특성 그대로를 건축 형태로 전환하는 일종의 반半건축적 작업이었다. 마을 제1호 프로젝트로, 앞으로 들어설 건축물들에게 가이드를 제시하는 사명을 충분히 지켜냈다고 본다.
경사지 위쪽 도로에서 보이는 건물의 첫 인상에는 입면이 없다. 남북으로 수평하게 깔려 있는 인공적인 판들이 전부다. 큰 도로면을 연장시키는 지층인 동시에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품는 널찍한 옥상데크로 존재한다. 공간은 그 아래에 묻히듯 앉혀 있다. 한쪽에서는 판들을 다시 완만하게 잇고 교차시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마련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동서 간의 경사지로 인해 생기는 사이 공간 그 자체가 커뮤니티센터의 내부공간이 되도록 했다.
평지의 마을로 들어서면 비로소 건물의 입면을 마주한다. 반사유리로 마감한 입면에는 마을의 건축지도를 그려넣었다. 건물 자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하나의 미디어가 되길 의도했다. 유리 표면에는 풍성한 수목들이 그대로 비쳐진다. 물리적 경계가 분명하지만 그 또한 주변의 자연을 확장시키며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을 주민들의 모임과 행사가 이루어질 다목적홀 역시 가변성을 띠고, 반 외부공간인 1층 데크와 나아가 부지 오른쪽의 마을광장으로 이어진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된 사무동은 주변의 싱그러운 초목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며 커다란 화면처럼 세워져 있다. 해질 무렵에는 노을 진 감빛 하늘을 고스란히 머금고, 어두운 밤에는 사무동 공간 전체가 큼직한 조명이 되어 마을 밝힐 것이다. 땅의 형상을 따라 낮은 목소리를 내며 서 있지만, 마을의 시작을 알리고 마을을 대표하며 마을을 설명하는 친절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똑똑히 해내고 있다.
프로젝트: 헤이리 커뮤니티 센터 / 대지위치: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539번지 통일동산지구 헤이리아트밸리 내 / 대지면적: 3,742m² / 규모: 지상2층 / 건축면적: 1262.4m² / 연면적: 585.53m² / 용도: 문화및집회시설 / 재료: 노출콘크리트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설계: 김준성, 김종규 / 기간: 2002-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