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ing Future: 지속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다, 헤럴드 디자인 포럼 2018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한 말이다.
그리고 300년이 지난 지금, 그 명제는 아마도 이렇게 바뀌어야 할 듯 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라고.

모더니즘이 태동할 무렵만 하더라도 디자인은 문제 해결problem solving을 위한 해법 정도로 여겨졌으나, 불과 100여 년만에 ‘디자인’의 의미와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범위를 규정하기 어려울만큼 확장되었다. 지금 이 순간 모니터나 핸드폰을 통해 읽고 있는 이 글의 글씨체조차도 엄연한 디자인이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이 디자인된 이 시대, ‘디자인(n.design)’이란 무엇이며 ‘디자인한다(v.design)’는 것은 어떤 행위일까. 그 고민과 논의의 장인 ‘제8회 헤럴드 디자인 포럼’이 지난 9월 14~15일 양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됐다.
주.헤럴드(회장 홍정욱)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는 기치 하에, 국내외 디자인 거장들의 철학과 지식을 대중과 공유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디자인 포럼이다. 2011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구체적인 주제를 내걸고, 상상을 넘어 실질적 변화를 일궈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 왔다.

올해도 ‘Designing Future: 지속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다’라는 주제 하에, 세계 각국의 디자인 거장들을 초청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발점으로서 디자인의 역할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포럼 기간이 예년보다 하루 늘어남에 따라 역대 가장 많은 14명의 전문가가 올해의 연사로 참여했으며, 산업, 가구, 건축, 공학, 미술,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대거 초청된 만큼, 양일간 총 천여 명의 참석자가 객석을 채우며 이번 포럼에 대한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디자인’과 ‘예술’, 두 개념이 충돌하고, 대화하고, 사랑하거나 증오하면서 관계를 맺는 시대다.

바르토메우 마리 Bartomeu Mari, 현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디자인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는 이 시대 모든 분야의 예술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바로 그 과제를 함께 나누며 공유하는 지식 교류의 장, 헤럴드 디자인 포럼에서 매년 빠지지않고 논의되는 주제가 있다. 바로 건축이다. 도요 이토Ito Toyo, 렘 콜하스Rem Koolhaas, 시게루 반Shigeru Ban, 가즈요 세지마Kazuyo Sejima, 까르메 피젬Carme Pigem 등, 매년 이 시대의 거장으로 불리는 건축가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건축 철학과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바를 설명함으로써 생산적인 건축적 담론을 제시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정보기술 혁명이 주도하는 미래를 화두로 던진 올해는 건축계의 존재감이 특히나 뚜렷했다. 14일은 디자인 매체의 명사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튿날인 15일은 건축을 중심으로 논의가 계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발맞춘 건축을 조명한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과 준야 이시가미Junya Ishigami,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뒤엎는 혁신을 제안한 박진희SsD 대표, 유현준유현준건축사무소 대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 마사 쏜Martha Thorne, 건축 전문가 5인의 비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감성적인 디자인 접근법: 토마스 헤더윅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토마스 헤더윅은 건축, 도시, 가구, 제품 등 분야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그야말로 만능 디자이너다. 규모도 영역도 다양하지만, 모든 작업은 관통하는 핵심은 늘 동일하다.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킬지라도 자연의 숨결을 간직한 창작물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싱가포르 난양 과학기술대학의 ‘러닝 허브Learning Hub (2015)’를 소개했다. 나선형 건물 안에 수직적 위계를 무너뜨리는 타원형 교실을 배치해 유기적 구조를 만들어낸 건물로, 언제 어디서나 원격으로 수업이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 다시금 사람을 모으는 통합 장소로서의 교육 공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버려진 사일로를 리노베이션한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Zeitz MOCAA (2016)’에서는 사일로의 윗부분은 과감하게 베어내면서도, 내부는 기존 건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디자인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더불어 현재 작업이 한창인 ‘구글 런던 신사옥’에서는 마치 패치워크 하듯 사무공간과 정원을 교차시킴으로써,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사무실을 제안한다. 결국 이 모든 창의적 결과물의 중심에는 자연과 사람이 있었던 셈이다. 기술로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미래 사회의 디자인적 해법은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공기와 같은 건축: 준야 이시가미

일본 건축계의 차세대 선구자로 꼽히는 준야 이시가미는 규범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하다. 이번 강연에서는 기술을 매개로 미래와의 접목을 시도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네덜란드의 ‘비버스부르크 공원 방문자센터visitor centre for Park Vijversburg (2014)’는 건물이라기보다는 투명한 유리 울타리에 가깝다.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기 위해 기둥을 없앤 덕분이다. 즉, 진일보한 기술력과 분석력에 힘입어, 기둥 대신 유리벽에 지붕의 무게가 고르게 분포되게 한 결과, 공기의 건축이라 불릴만 한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미굴 같은 지하 레스토랑을 만들고자 했던 일본의 ‘하우스&레스토랑House & Restaurant (2014)’은 지면 굴착 후, 구멍에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콘크리트가 굳으면 다시 주변부의 토양을 파낸, 그야말로 도전적인 프로젝트다. 인공물이 자연이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된 인공물을 다시 발굴하는 격으로, 구멍을 구조물로 탈바꿈시킨 이 창의적인 작업은 건축이 기술을 동력으로 삼는다면, 그 잠재력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살펴본 좋은 예시라 할 수 있다.
그의 강연이 더욱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건축가의 역할을 건물의 디자인, 그 이상으로까지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작업이기에, 그는 신기술의 시도가 자칫 과도한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례로 이 프로젝트에서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구멍을 파내기 위해, 한 분야에만 능통한 전문가들을 단계별로 고용하는 대신, 다양한 직무를 두루 수행할 수 있는 다섯 명의 작업자들과 협업함으로써 비용의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미래의 디자이너는 기존의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마사 쏜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관계와 삶을 만든다: 유현준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도시와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소개해 온 건축가 유현준은 현재 우리 도시가 직면한 문제점을 꼬집으며 미래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현대 도시에서 돈 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공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나아가 일명 핫플레이스의 변천사를 되짚으며, 과거에는 건물 안에 있던 코엑스의 역할을 이제는 건물 밖의 거리인 가로수길과 익선동이 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가에 대한 반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를 보다 거시적인 측면으로 연결시키며,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학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전체주의적 사고의 시초는 학교 건축에 있다고 말한다. 학교가 수용하는 액티비티가 다양해짐에 따라 학생 한 명이 필요로 하는 교실 면적은 증가했지만, 제한적 필지 상황에 의해 수직 증축만을 거듭한 결과, 교도소 건물과 다를 바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 맺음을 가로막는 이러한 학교 건축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아이들의 개성을 가지치기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때문에 건축가는 단조로운 공간이 개개인의 다양한 결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사회 역시 건축가가 새로운 유형의 학교 건축을 제안했을 때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움직이는 도시, 움직이는 사람, 움직이는 공간: 박진희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한 건축사무소 SsD를 설립한 박진희는 ‘마이크로 어버니즘micro urbanism’을 연구하며 건축과 도시를 혁신하려는 실험을 계속하는 건축가다.
그가 만든 공간은 변화한다. 최소한의 물질적 요소와 최대한의 환경적 요소를 분석해, 한 공간에 여러 기능을 담고, 시간대나 이용 빈도에 따라 사용자가 그 공간을 자유롭게 재구성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구부터 공간을 구획하는 벽까지, 고정된 것이라고는 없는 뉴욕의 ‘HBNY (2006)’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또한, 그의 건축은 사회 현상의 발현이다. 특히 국내 대표작인 ‘송파 마이크로 하우징 (2014)’에서는 변모하는 도시와 사회의 모습에 맞추어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안하기도 한다. 1인 가구 여덟 세대가 함께 사는 이 셰어 하우스는 해가 갈수록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그러나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로 이분화된 오늘날의 주거 형태에는 적합지 못한, 1인 가구를 위한 공동 주거 시설이다.
각자의 생활 방식에 따라 매 시각 새롭게 설정되는 건축은 일반적이진 않지만 실용적이고, 오늘의 사회를 관찰하여 만들어낸 내일의 건축은 실험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며, 미래에도 지속할 수 있는 건축의 면모를 보여준다.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 마사 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의 디렉터이자 스페인 IE 대학교의 건축디자인대학 학장인 마사 쏜 역시 사회에서 건축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마사 쏜은 미국에서는 단 25%의 건물만이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다고 말한다. 건물을 관장하는 이가 건축가인듯 싶지만, 아직까지 도시에서 건축가의 영향력은 미미함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는 건축가들이 스스로의 위상을 찾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은 사회가 건축가의 역량을 십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앞으로 건축가가 사회 속에서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건축가들 역시 지금까지처럼 ‘짓는 이’로서의 역할에만 안주해서는 안된다며, 건축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적인 건축사무소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어셈블 아키텍츠Assemble Architects 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많은 대중에게 건축의 공공예술적 측면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며, 시게루 반은 실무와 리서치를 병행하면서 재해 지역을 위한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모아 누구나 지역의 건축 법규를 검토할 수 있는 앱을 구축한 숍 아키텍츠SHoP Architects의 행보도 주목할 만한 사례로 꼽으며, 도시를 디자인하는 건축가들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은 단순히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스마트 도시가 아니라, 복잡한 시스템의 집합체로서의 ‘반응하는 도시’, ‘탄력 있는 도시’임을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는 미래의 건축계를 이끌 학생뿐 아니라 현재의 건축계를 이끄는 건축가 또한 문제의 일시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집합적인 정보를 통해 미래까지 그리는 디자이너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3D 프린팅 기술을 도입한 극도의 실험적 건축, 혹은 모듈화 공법으로 지은 지극히 실용적인 건축. 미래의 건축에서 으레 연상되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주제로 한 올해 포럼에서 이러한 건축을 미래의 건축으로 얘기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연사는 다시금 ‘사람’에 주목하기를 권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건축이 ‘삶을 담는 그릇’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생명력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물론 제한적인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는, 능동적인 태도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 요소다.
그럴 준비가 됐다면 이제 당신이 미래를 그려볼 차례다. 자격은 충분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듯, 사실 우리 모두도 매일의 삶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이니 말이다.
글 / 부은빈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