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축물 중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을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내온 고건축물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간혹 현대 건축물을 꼽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DDP나 서울 신청사처럼 파격적 디자인으로 큰 이슈가 된 사례들도 하나둘 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근대 건축이라는 대답은 여간해서는 듣기가 어렵다. 사회의 모든 관심이 경제 성장에만 맞춰져 있던 60, 70년대, 그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가치’ 혹은 ‘의미’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잊혀진 시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보통의 건축을 향한 건축가와 건축사진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저자는 최근 화두가 되는 ‘도시재생’이 진정한 의미에서 이뤄지려면, 대상이 되는 건물 하나하나를 보다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옛 서울의 얼굴, 한 세대 전 이 도시에 지어진 이름 없는 건물들의 입면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보통 건축물’에 대한 애정을 건축적 연구의 범위로 확장해 간다.
책은 세 장으로 구성된다. 1부 ‘합벽건축의 파사드’에서는 을지로와 칠패로, 삼일대로를 중심으로, 1960년대 전후에 합벽 형식으로 지어진 상가 건물들을 찾아 나선다.
또한, 2부 ‘격자패턴의 파사드’는 을지로와 세종대로의 건물들을 분석하여 격자패턴 파사드가 지닌 ‘형태적 유사성’을 짚어본다.
마지막으로 3부 ‘수평띠의 파사드’에서는 남대문로부터 충무로, 을지로, 청파로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만난, 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가로로 긴 창을 소개한다.
이렇듯 책은 크게 3개의 유형에 따라 구성되어 있지만, 저자는 단순히 파사드를 같은 유형끼리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건물들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으로까지 관심을 확대시키며 연구의 깊이를 더해간다. 두 저자 모두가 도면을 통해 정보를 시각화하는 데 익숙한 건축 전공자인 만큼 사진과 함께 쓰인 수백 장의 도면은 저자가 분류한 파사드의 유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보통의 건축으로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인 평범한 근현대건축물.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건물들 역시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