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 선 · 면
20세기 건축을 점철한 단 하나의 재료를 고르라면 아마도 콘크리트가 아닐까. 지난 세기, 우리는 그 딱딱하고 묵직한 콘크리트로 환경을 ‘이기기 위한 건축’을 해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21세기의 우리도 여전히 ‘이기는 건축’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구마 겐고의 건축 이야기를 담은 ‘점·선·면’이 출간됐다.
자연을 소재로 건축과 장소, 건축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살펴온 구마 겐고는 이 질문에 ‘지는 건축’으로 ‘이기는 건축’을 대신할 것이라 답하며 지는 방법을 탐구한다. 그가 말하는 지기 위한 기본 조건은 단위가 작은 것. 이러한 생각으로 작음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특히 ‘점, 선, 면’에 주목한다.
책은 구마 겐고의 입자 건축론을 펼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하는 ‘방법서설’로 시작하여, 역사적인 건축 작품과 본인의 대표작들을 ‘점’, ‘선’, ‘면’, 세 파트로 나누어 소개한다.
볼륨이 등장한 20세기 전에는 볼륨 바깥에 다양한 행복이 있었다. 골목을 거닐거나 평상에 누워 빈둥거리는 행복은 볼륨 밖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급성장한 경제 규모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를 감당해야 했던 20세기에는 볼륨 안에 가능한 많은 사람을 밀어 넣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에 의문을 품지도 않았다. 구마 겐고는 이런 볼륨의 속박에서 벗어나 물질과 공간이 이룬 자유로운 흐름에 몸을 맡길 방법으로, 점, 선, 면을 통해 볼륨을 분해하길 권한다.
책 말미에는 1978년 겨울, 사하라 사막으로 취락 조사를 떠났던 일화도 담겨 있다. 그는 그곳에서 점이 집합한 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인 취락,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지은 열대 우림의 식물 집, 혹독한 환경에서 유목민을 지켜주는 부드럽고 얇은 천막까지, 새로운 땅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미래 건축이 목표로 삼아야 할 모습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더불어 작고 약하고 덧없는 사물이야말로 이토록 황폐해진 세계에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모양과 치수는 같아도 재료를 바꾸자마자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일은 건축 세계에서 자주 겪는 일이다. 같은 모양의 점과 선이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물질과 인간의 관계는 그만큼 미묘하다.”
세상이 발전하고 급변하는 사이 거대해진 건축. 그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커다란 사물에서도 작은 것을, 작은 사물에서도 커다란 것을 발견하는 자세다. 빠르게 확장되는 세계에서 생존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오늘날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해답을 이 책과 함께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