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보이드
Devoid
건축사사무소 아르키움 + 김인철 | Archium + In-Cheurl Kim
공간을 상실시키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모순적인 논리를 구태여 짚어 보자면, 공간이 없음을 존재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없는 것을 있도록 하자면 우선 있고 없음의 한계를 규명해야 하는데, 감각되지 않는 것은 없음으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를 한 장방형의 물체가 아무런 표정도 없고 미동도 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은 그러해서다. 감각되지 않도록, 그래서 없는 것으로 인식되도록, 결론적으로 공간의 없음이 존재할 뿐이라는 논리를 실증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없음으로 존재하려던 공간은 안타깝게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없음으로 존재한다고 정의 내리기에는 공간의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이 오히려 너무 강렬하고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체험되기 때문이다.
원자재의 물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회색 노출콘크리트 사면 벽에서는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의 기능과 규모만을 갖춘 개구부만 나 있을 뿐 상당히 폐쇄적이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보편과 상식의 선을 넘어선 것이다. 없음 혹은 상실을 향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공간은 지극히 도시적이고 차가운 실체로 세워져 있다. 멋스럽고 세련되게 다가오는 그 감각에 자극 받고 있음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던가, 공간이 없음으로 존재한다던가 하는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간을 상실시키고자 시도한 경계부 안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공간이 없음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된다. 폐쇄성 짙은 경계 안에서 공간은 오히려 자유롭다. 안에서 발견된 공간은 그 무게와 점성과 질감이 전혀 가두어져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찾아낸 공간의 본질은 갇혀 있지 않다. 사방이 막혀 있어도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보이드는 상식의 틀을 벗어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상식이 배제된 상태를 만들어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 상식적인 보이드가 없어지면서 개념적인 보이드의 실체가 나타날 것이다. 그 작은 통로만으로 공간은 깊이 호흡하고 있고 자유로운 구성으로 해체되며 또 편집되고 있다. 이 복잡한 감각적 경험은, 공간이 없음을 존재시키는 일에 성공한 동시에 또 실패했음을 증명한다. 공간의 존재 의미가 이로써 설명되고 있다.
작품명: 디보이드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01-18 / 설계: 김인철 + 아르키움 / 지역: 일반주거지역 / 대지면적: 342.6m² / 건축면적: 181.65m² / 연면적: 1122.04m² / 규모: 지하2층, 지상5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마감: 노출콘크리트, T24 복층유리 / 설계기간: 2002.10~2003.1 / 시공기간: 2003.3~2004.9 / 사진: 박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