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이자 민족문화유산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첫 번째 상설전시장을 마련한다. 그 청사진이 될 국제설계공모 결과가 지난 1일 발표됐다. 국내외 유수의 건축가들을 제치고 선정된 최종 당선팀은 최문규와 가아건축사사무소. 대구시가 간송미술관 상설전시장을 유치한 지 4년 만에 마침내 그 밑그림이 완성되면서 미술관 건립도 한층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현재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일제 강점기, 간송 전형필 선생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가며 모은 문화재들을 수호하기 위해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미술관이다. ‘최초’뿐 아니라 ‘최고’도 간송미술관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훈민정음해례본, 동국정운 원본을 포함하여 12점의 국보와 23점의 보물, 4점의 서울시 지정문화재 등을 보유하고 있으니 가히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이라 할만하다.
이런 간송미술관에서는 매년 봄·가을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일 년에 단 두 번, 총 4주뿐인 개방 기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이 미술관 초입부터 인근 도로까지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반나절을 기다려 전시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여유 있게 보고 싶은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람객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보니 쾌적한 관람 여건은 기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개방 기간에도 모든 소장품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해당 전시회의 주제에 맞는 문화재만 선별적으로 전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국민들의 높은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폐쇄적이었던 기존의 모습을 바꾸려는 시도들을 해오고 있다. 대규모 전시를 열기 어려운 미술관의 상황을 고려해 외부 전시를 개최하는가 하면, 2016년부터는 대구시와 협약을 맺고 간송미술관 소장품 상설전시장 건립 사업도 추진 중이다.
대구 간송미술관 부지로 낙점된 곳은 대구 동쪽, 대덕산 자락에 위치한 수성구 삼덕동 일원으로, 시내에서 약간 벗어나 있으며 주변에는 대구미술관, 대구스타디움, 라이온즈파크 등의 문화·체육시설이 분포해 있다. 뛰어난 자연환경과 기 구축된 문화 인프라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한 땅이다.
이에 대구시는 국보급 문화재를 상설 전시할 대구간송미술관을 건축물 그 자체가 명소가 되는, 창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미술관으로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단계에 걸친 국제설계공모를 개최했다.
공모는 1단계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된 3팀(페르난도 메니스Fernando Menis, 스페인, 김기석기단건축사사무소, 최문규연세대학교, 가아건축과, 사전에 선정된 초청 지명건축가 3팀(조성룡조성룡도시건축,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Alvaro Siza Vieira, 포르투갈,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영국), 총 6팀이 경합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차 공모에는 중도 포기한 리차드 로저스를 제외한 다섯 팀이 최종안을 제출했으며, 국내외 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5인의 심사진(믈라덴 야드리치Mladen Jadric, 오스트리아 비엔나공대, 강석원그룹가건축도시연구소, 문진호DMP건축, 정성원세종대학교, 최재필서울대학교, 이광환예비심사위원, 해안건축)은 최문규 + 가아건축 팀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안은 간송이 지킨 우리의 문화재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을 담았듯, 문화재를 담는 미술관 또한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단식 기단, 터의 분절, 소규모 집들의 집합과 그 사이공간 등, 한국 전통 건축의 요소들을 접목함으로써, 주변 자연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건축,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침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축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진입로는 간송의 상징인 소나무가 반겨주는 열린 공간이자,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나무와 돌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장소로 계획했다. 또한, 지형에 따라 나뉜 터마다 작게 분절된 건물을 앉힘으로써, 자연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유연한 공간을 만든 점도 눈에 띈다.
심사진은 당선작에 대해 “지형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녹아드는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을 구현하고자 노력했으며, 유형별 전시에 적합한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대구간송미술관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
박희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도 이번 공모 결과 발표에 대해 “국보급 문화재의 상설 전시로 지역민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대구미술관과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시각예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지역 문화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되도록 하겠다”라는 의지를 전했다.
당선팀에게는 실시설계권이, 나머지 4명의 건축가에게는 소정의 지명료가 지급되며, 당선팀은 이달부터 실시설계를 진행하는 등, 2021년 착공, 2022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후속 작업을 추진한다.
아울러 대구시 측은 작품전시회, 작품집 발간도 함께 추진하여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글/전효진 기자, 자료제공/대구광역시 문화예술정책과
조성룡 조성룡도시건축 + 수류산방 + 소재
대구 간송미술관은 남쪽의 간선도로와 대구 시립미술관을 연결하는 길이 된다. 크게 두 개의 매스가 서로 얽히는 형상으로, 이 매스들은 각각 ‘대구보화’와 ‘간송풍류’의 개념에 대응한다.
대구보화: 시립미술관 방향 쪽의 주된 입면을 형성하는 매스로, 대구 영남 지역의 현재 예술을 품는 기획 전시실로 활용된다. 새로운 예술을 위한 대공간 전시실과 극장 등이 배치된 강렬하고 모던한 공간이다.
간송풍류: 대구보화에 얽히며 골짜기를 따라 북쪽으로 흐르는 매스로, 간송미술관 소장품 상설 전시가 이뤄진다. 전통 건축의 미적 논리를 따른 산길과 같은 전시실로, 소장품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중성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다.
기획전과 상설전에 각각 대응하는 두 개의 매스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면서도 얽혀 방문객에게 탐방의 즐거움과 관리의 편의를 제공한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Alvaro Siza Vieira, Portugal
대지의 경사를 따라 자리 잡은 미술관은 대지와 어우러지며 공원이 된다.
아름다운 공원을 걸어온 관람객은 앞마당을 거쳐 미술관에 입장하며, 들어선 곳과 같은 레벨에는 기획 전시실이 배치된다. 모든 시간과 장소로부터 도착한 작품들의 전시가 펼쳐지는 곳. 천창을 통과한 빛은 그 공간을 넉넉하게 흐른다.
미술관은 세 개의 몸체로 이루어진다. 중정을 품은 ‘ㅁ’자형 전시관과, 그로부터 양옆으로 뻗어 나간 두 개의 매스다. 하나는 수장고이며, 다른 하나는 관람객들을 위한 편의공간 겸 교육공간으로, 공원과 산책로, 기존 주차장을 향해 열려 있다.
김기석 기단건축사사무소 + 강진 건축사사무소 제이강 + 석강희 경일대학교
대구 간송미술관은 건축 그 자체가 새로운 경관의 흐름을 생성하여, 개발로 인해 단절된 대상지 주변 지형을 이어내며, 지역과 건축의 관계를 다시금 규정 짓는다.
설계는 두 방향으로 경사진 부지의 지형적 흐름을 파악하고, 그 지형을 절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지형은 경사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더 깊이 파여지면서 간송의 전시물들을 담아내는 전시공간 볼륨을 형성하고, 이 볼륨은 ‘자연-전시-자연’이라는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대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는 교차 방향의 완만한 경사는, 남측 산에서부터 대구미술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방문객들의 동선을 확장 시킨다.
즉, 두 방향의 경사는 부지 내 건축의 배치 방향을 결정하고, 대구미술관과의 독립적이면서도 강한 연계를 맺을 수 있는 강력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페르난도 메니스 Fernando Menis SLPU, Spain
부분적으로 파묻힌 거대한 주춧돌 위에 각기 다른 생김새의 토템들이 올려져 있다. 빛, 아카이브, 전시, 행정, 네 종류로 구분되는 토템들이다.
첫 번째 ‘빛 토템’에서는 빛과 콘크리트의 조화를 통해 시각적 감동을 전달하며, 두 번째 ‘아카이브 토템’은 보존 연구실, 개방형 수장고, 기자재 창고 등의 기능을 하나로 연결한다. 거북선을 모티브로 한 ‘전시 토템’에서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국보급 작품들을 전시하며, 박물관 운영과 관리는 마지막 ‘행정 토템’에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