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토프 월
Chronotope Wall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
최고 높이 12m에 총 13개의 벽, 헤이리예술마을에 새로이 들어선 근린생활시설의 첫 인상과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끄집어내게 될 표현일 것이다. 책장 속 북엔드처럼 공간을 질서 정연하게 구획 짓고 있는 모습에 도열된 벽의 역할이 자칫 진부하게 해석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초적인 건축적 어휘 중 하나인 벽이 건축 전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벽은 전통적인 기능에 머문 기존 개념으로서의 벽이 아니다. 구조적 한계로 인한 혹은 공간의 분할을 위한 장치라는 벽의 고전적 역할과 이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벽이다. 일종의 저항하는 벽이다. 나아가 다채로운 공간을 생성해내어서 연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하고 도전하는 벽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노트프’가 떠올려진다. 즉, ‘문학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이 본질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 특성’을 차용한, 그래서 ‘크로노토프 월’이라 명명하고 있다.
크로노토프적 설정에 의해서 변화된 벽은 어떤 경험과 상황을 생성해내게 될까? 벽은 질문 그 자체이자 스스로 답을 제시해 놓고 있다. 말하자면, 벽에 관한 새로운 정의와 가능성을 융합과 통합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절과 분할을 위한 구조체로서의 벽과는 오히려 반대적인 태도인 통합과 연속, 동시적 공간과 연속적 시간의 틀로서의 벽을 선보이는 것이다. 13개의 벽을 세워 놓는 것만으로 사이사이 수많은 외부 공간들이 절로 만들어지고 있다. 크고 작은 평면들이 공간의 파편처럼 생성되면서 다채로운 용도와 목적의 공간들이 구성되고 있다. 모든 공간들은 벽으로 인해 나누어져 있으나 동시에 벽을 매개로 이어져 있다. 이들 외부공간이 건물 사이사이 삽입된 채 자리 잡으면서 주변의 풍경과 하늘과 빛이 흐르고 관통되는 건축이 완성되고 있다. 연계된 공간에 시간도 연계되고 포개져 공간과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며 동일하게 경험된다. 그 중심에 벽이 자리하는 것이다.
벽으로 감싸인 정원, 반 외부 테라스, 옥상 테라스 등은 작지 않은 규모의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관계 맺고 호흡하는 통로다. 특히, 옥상 공간은 벽 전체를 관통하며 열려 있는 랜드스케이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개방감으로 사람들이 벽과 벽 사이를 흘러가는 공간들을 자유롭게 점유하고 향유하게 된다. 더 이상 벽은 단절이 아니다. 닫힘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나누어진 공간들을 연결하고 매개하는 관문으로서 ‘따로 또 같은’ 장치로 발현된다. 융합과 통합이라는 기능이 추가된 새로운 경험의 건축적 어휘로서의 벽을 제시한 것이다.
위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43 / 대표건축가: 장윤규, 신창훈 / 설계팀: 고영동, 최상현, 고은솔, 조아라, 한나례, 임소현, 정명길, 조서연 / 용도: 제 1종 근린생활시설 / 규모: 지상 3층 / 대지면적: 1,223.20㎡ / 건축면적: 574,66㎡ / 연면적: 1,231.28㎡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최고높이: 12m / 외부마감: 벽-외단열시스템(STO), 바닥-지정목재마감, 지정석재마감, 잔디블록, 천장- 금속천장재, 노출콘크리트 / 내부마감: 벽-백색무광타일, 외단열시스템(STO), 노출콘크리트/ 바닥-에폭시마감, 지정석재마감, 지정목재마감, 천장-노출콘크리트, 방수석고보드 / 설계기간: 2018. 05 ~ 2019. 10 / 시공기간: 2019. 12 ~ 2021. 05 / 구조: 세움구조 / 기계: 건양엠이씨 / 전기: 전기설계 협인 / 토목: 은혜이앤지 / 조경: MWD / 시공회사: ㈜세움종합건설산업 / 사진작가: 남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