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승대 성당
땅과 몸체 사이에 경계가 없다. 당연히 건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연속된 땅의 일부가 되겠다는 겸손한 몸짓으로 땅만큼 혹은 땅보다 낮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공간의 그러한 태도를 땅은 겸허하게 덮고 있고 감싸고 있는 듯하다.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져야 한다는 신앙의 본질 앞에 순응하는 태도를 성당은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성당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육군사단 내 헬리콥터 부대인 비승부대에 위치한다. 작품을 의뢰받았던 1990년대 초 무렵에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국토의 여기저기가 온통 파헤쳐져 땅이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땅의 형편에 순응한 모습은 사실 신앙의 정신을 공간에 담으려는 생각보다는 무분별한 자연 훼손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의지로 설계된 이유가 크다.
주어진 부지의 면적은 70평 정도로 작은 편이다. 살짝 기울어져 나지막하게 구릉을 형성하는 대지의 형상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어느 방향에서나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단층의 예배당 지붕이 되고 있는 구릉지 위를 바라보면 대지예술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전해지기도 한다. 십자가 외에는 휘어진 성당 벽의 끄트머리인 콘크리트구조물이 땅의 경사를 따라 나지막하게 그려져 보일 뿐이다. 헬리콥터의 원심력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원심력으로 운동을 하다가 궤도에서 이탈하면서 나타나는 힘의 선들이 땅 위에 어떤 흔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원심력이 그려내는 궤적들이 건축적인 형태로 환원되고 번안되어 땅에 조각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경사진 지붕과 휘어진 성당 벽 끄트머리 사이의 좁은 틈은 종교시설로서의 상징적인 요소로 읽힌다. 어두운 지하 예배당에 빛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물리적으로도 경건한 실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밤이 되면 빛을 주고받는 위치가 서로 바뀐다. 예배당 안의 조명빛이 어두운 대지와 대기 위에 한줄기 빛을 환하게 그려낸다. 헬리콥터를 타고 야간에 복귀할 때면 갈라진 땅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선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 기호처럼 그려지는 빛의 풍경은 밤을 뚫고 복귀하는 장병들을 안전하게 인도해줄 것이다. 더 나아가 종교적인 의미에서 어둠 가운데 있는 영성들을 신앙의 빛으로 인도한다는 은유적 의미도 부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치: 경기도 이천 비승부대 / 규모: 지상1층 / 건축면적: 347.78m² / 연면적: 330.35m² / 용도: 성당(종교시설) / 재료: 노출콘크리트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설계: 김준성 / 시공: 한울종합건설 / 기간: 1992-1993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