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인가?
디자인 – 인간의 고고학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침대도, 세수를 하려고 돌린 수도꼭지도, 손안의 휴대전화도 모두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된’ 것들이다. 집을 나서도 마찬가지다. 신호등 속 표준인간 이미지를 따라서 길을 건너고, 취향에 맞는 이모티콘으로 순간의 기분을 표현한다. 좋은 디자인,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말도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런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온통 디자인에 감싸인 채 살아가고 있지만, 의외로 이 질문에 바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디자인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 “우리는 인간인가?”가 출간됐다. 건축이론가 베아트리츠 콜로미나Beatriz Colomina와 건축가 마크위글러Mark Wigley가 공동 저술한 책으로, 제3회 이스탄불 디자인 비엔날레의 책임 큐레이터였던 두 저자가 동명의 전시를 준비하며 나누었던 대화의 순간들을 담은 일종의 현장 수첩이기도 하다.
책은 ‘디자인-인간의 고고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디자인과 인간의 역사를 마치 고고학자처럼 심층적으로 탐색해본다. 디자인을 독립된 학문의 분야로서 개괄하고 정의하는 대신, 인간과 디자인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면서 16가지 키워드(디자인의 거울, 가변성의 인간, 디자인의 충격, 인간의 발명, 장식적인 종,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 좋은 디자인은 마취제다, 건강의 디자인, 인간 중심의 디자인, 마찰 없는 윤곽선, 신체의 디자인, 도착의 디자인, 유령의 디자인, 불안정한 육체, 호모 셀룰러, 2초만의 디자인)를 항성으로 삼아 사고의 별자리를 그려나간다. 이 키워드들을 매개삼아, 원시 시대부터 근래에 마주하게 될 다양한 문제에 대한 성찰, 나아가 인간다움에 관한 고찰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거의 언제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디자인이 모든 인간 행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란 세계적인 건축·디자인 석학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의 말은 책을 읽는 순간순간 떠오르게 된다.
이 책 역시 “디자인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어느 독자의 평처럼 “오늘의 인류에게 건네는 내일의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 탓에, 그 답을 하기가 어쩌면 더 모호해졌을지도 모른다. 책이 확실하게 대답해 주는 건, 인간은 디자인을 창조하고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재창조된다는 것뿐이다. 사유의 지도가 되어줄 이 책을 나침반 삼아, 인간과 디자인의 상호작용, 그 영원한 관계성을 탐색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