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감각의 기술
감각의 건축을 위한 내시경적 탐독
감각은 온몸을 통해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수단으로, 소비사회의 확장, 신체의 재발견,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같은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탐구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은 감각을 확장하는 도구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신체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커지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건축의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표면인 외피는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일깨우는 매체가 된다. 감각의 시대에 기술과 건축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기술의 발전은 건축에 어떠한 개념을 부여하며 기술과 상징이 결합된 감각적 현상을 만들어낼까?
이 책은 기존 건축에서 꾸준히 다뤄왔던 공간에 대한 동경과 형태에 대한 집착을 넘어 건축 표면에서 감각과 기술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기술과 감각이 통합된 오늘날 건축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현대건축의 외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연구를 제시한다. 감각의 관점으로 외피를 탐색하고, 구축의 관점으로 구조, 디테일, 재료에 관해 설명한다. 깊은 이해를 돕고자 인문학적 배경이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 같은 시대·문화적 배경도 짚어본다.
저자가 20여 년에 걸쳐 답사한 300여 개 해외 건축물 중 37개를 선별해 7장으로 묶었다. 각 장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은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건축을 체험하게 한다.
‘또 다른 백(Off-white)’에서는 흰색을 단순히 색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색이 없음을 나타내는 존재이자 고요함, 공백 같은 여러 가치를 가진 물질로 바라본다. 빛과 그림자가 흰색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관능적 역동(Sensual Form)’은 비정형 건축 사례를 통해 곡면 형태가 주는 감각적 체험과 곡면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방법 등을 소개한다.
‘시각적 촉각(Tactility)’은 눈으로 본 대상이지만 질감이나 속성에 대한 촉감의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마치 만지는 듯한 경험을 의미한다. 독특한 입면 재료와 구성 방식이 돋보이는 사례들은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외피의 일탈(Another Skin)’에서는 단순히 내외부를 가르는 고정된 경계면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능동적 표면으로서의 ‘외피의 역할을 조명한다.
선명도와 정확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희미한 경계(Blurred Boundary)’는 의존도가 높은 시각 대신 잠재된 감각을 깨워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해 건축 표면의 이미지와 공간 표현의 잠재력을 넓혀준 사례들을 다룬다. ‘시간의 흔적(Weathering)’은 기후와 시간으로 인해 건축 표면에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뜻하는 웨더링 현상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가벼움이라는 감각(Lightness)’에서는 무게를 효율적으로 지탱하는 반중력의 구축을 실현하고자 어떠한 기술적 노력들이 이뤄졌는지 살펴본다.
책은 주제를 논증하는 대신 뒷받침할 사례들을 적절히 분류하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한다. 선명한 이해보다는 각기 다른 장과 작품이 서로 비교되고 또 재결합되면서 책에서 다루는 주제 외에 또다른 감각적 관점을 갖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