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문답
입장-개념-비전
여느 분야가 그러하듯 건축계에도 시대를 이끄는 선구자들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디에서 모티브를 얻고 무엇을 원동력 삼아 설계를 풀어갈까? 그리고 결국 어떤 건축을 하려는 걸까?
그 원론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은 책 ‘건축 문답’이 출간됐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건축학과가 동시대 건축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시행한 동명의 프로젝트 중 인터뷰만 발췌한 모음집으로, 건축가의 역할과 건축의 존재 의미에 관한 스위스 건축가 30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
마리오 보타, 발레리오 올지아티, 헤르조그 & 드 뫼롱, 페터 춤토르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거장 건축가부터 떠오르는 신성 건축가들까지, 인터뷰에 참여한 30인의 건축가는 자신의 생각, 모티브, 욕망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한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띠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들은 각종 현안과 과제들, 그 해결 방안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기존의 방식에 대한 재고와 비판은 물론 사랑하는 장소, 동료들에 대한 평가, 선후배 세대에 대한 토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부심과 불만과 염려까지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연구자들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스위스 건축가 집단의 사고 체계를 그려낸다는 것이다. 작품에는 물리적으로 드러나지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숨겨진 건축가의 입장을 밝혀내고, 눈에 보이는 건축 스타일이 아닌 사고와 행동 사이의 관계를 통해 표현의 차이를 넘어서는 공통분모를 찾아낸다.
자극적인 형태 언어에 대한 거부감,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 효율성에 떠밀려 건축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 등, 건축가들이 공통적인 의견을 모아 동시대 스위스의 건축 문화 지형도를 완성한다.
30인의 건축가와 연구자들이 마련한 귀중한 대화의 자리를, 동시대 삶과 공간의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로, 나아가서는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과제, 내일의 꿈에 대한 또 다른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