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문자의 집이라면 건축은 사람의 집이다.”
한평생 집을 짓고 글도 짓던 건축가이자 비평가 이일훈(1954~2021)이 지난 2일, 폐암 투병 끝에 6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78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이일훈 씨는 김중업 건축연구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건축연구소 후리’를 개소했다. 독립 이후로는 승효상, 조성룡, 민현식 등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젊은 건축가들의 모임 ‘4·3그룹’ 일원으로 활동하며 건축가로서의 역량을 넓혀갔다.
1984년에는 건축잡지 <꾸밈>에서 주최한 건축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로 등단했으며, 최근까지도 건축평론동우회 멤버로 활동하며 건축 비평가로서의 활동을 병행해왔다. <건축과 환경(현 C3)>에도 창간 직후인 1984년부터 십여 년 이상 다수의 에세이와 비평을 게재하며 한국 현대건축의 면면을 날카롭게 진단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채나눔’이라는 자신의 설계방법론을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절제된 어휘로 보여준 <불편을 위하여(키와채, 2008)>, 월간 <숲>에 연재한 글로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사문난적, 2011)>, 건축주인 국어선생 송승훈과의 이메일 대화를 엮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서해문집, 2012)>, 도시산책자의 눈으로 거리와 공간을 바라본 <사물과 사람 사이(서해문집, 2013)>, 세상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치 낙서처럼 꾸밈없이 적은 <이일훈의 상상어장(서해문집, 2017)> 등 여러 권의 단행본을 내면서 개성 강한 글로써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대중과 적극 소통해 왔다.
이일훈의 건축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채나눔’이다. 바깥에서 지내는 곳을 다채롭게 만들고, 공간을 큰 덩어리로 만들기보다 쪼개고 나누어 늘리면,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시작하지만, 건축과 디자인, 도시설계, 나아가 자연과 생태 환경 문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숲처럼 자연스러운 건축을 강조해왔던 그의 건축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에서도 한결같이 그러한 ‘식물성 사유’가 드러난다. 인천 동구 만석동 달동네에 지어진 ‘기찻길옆 공부방’에서는 가난한 동네의 꿈을,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자비의 침묵 수도원’에는 무한한 신의 사랑을 건축에 담는다. ‘작은 큰집’에서는 지형의 회복을 돕는 건축적 자세를 보여주는가 하면,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에서는 불편하게 살기의 실천을 권유한다.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은 ‘좋은집’으로 쓰여질 때 가능하다. 내부기능과 관계없이 만들어진 형태의 소모성 유희는 건축의 건강함을 해친다. …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환경과 변화될 상황의 예측이 전무한 채로 지어지는 불감증의 건축이 얼마나 땅과 동네에 대한 큰 해독이란 말인가.”
1992년 주택 ‘운율재’를 완공하면서 ‘건축과 환경’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작품으로서의 드러남보다는 조화를 위한 묻힘의 가치를 알았던 건축가, 평생에 걸쳐 검소한 건축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방안들을 제시해 온 비평가. 한국 건축계와 후배 건축가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떠나간 고인을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