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7일 — 기자: 카이로 발
고대 비문이 밝힌 진짜 건설자들
최근 공개된 고대 비문과 장인들의 무덤이 이집트 피라미드의 실제 건설 주체를 분명히 했다. 수십 년간 되풀이된 ‘노예 동원’ 신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으며, 현장에 남겨진 작업반 낙서와 명문(銘文)은 숙련된 전문 인력의 조직적 참여를 증언한다. 발굴을 이끈 자히 하와스 박사는 발굴 구역에서 확인된 장인의 매장지와 작업반 이름을 들어, 건설자들이 임금을 받는 기술자이자 국가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임을 강조했다.
무덤의 배치와 부장품은 이들이 사회적 존중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만약 그들이 노예였다면, 피라미드의 그늘 아래에 장엄한 영구 매장을 허락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장 상부의 좁은 완화 공간에서 확인된 붉은 안료 표식과 팀 표기 역시 실제로 작업한 사람들의 손이 남긴 직접 증거다.
‘노동자 도시’가 드러낸 삶의 조건
피라미드 동쪽에서 드러난 노동자 거주 구역은 빵 굽는 제분‧제과시설, 막사, 도구 공방까지 갖춘 완전한 커뮤니티였다. 음식물 잔해 분석은 소·염소 뼈가 다량 확인되었음을 보여 주며, 이는 영양가 높은 식단과 안정적 보급 체계를 가리킨다. 매일 최대 수천 명 규모의 인력을 지속적으로 급양할 수 있었던 정황은 국가 행정력과 물류 운영의 성숙을 입증한다.
이러한 증거는 현장을 채찍으로 몰아붙이던 비인간적 강제 노동의 이미지와 다르다. 대신 숙련공, 기술자, 운반‧정렬 팀이 분업과 품질 관리에 따라 움직인 조직화된 공정이 보인다. 한 연구원은 “이곳은 고대의 거대 프로젝트 본부이자 생활 도시였다”고 말한다.
- 대규모 제빵 설비로 안정적인 식량 공급
- 장거리 운반 인력을 위한 막사와 숙소
- 석재 가공을 담당하는 전문 공방
- 곡물·육류를 보관하는 저장 공간
- 의례와 치유를 위한 소규모 제의 구역
현장에 남은 ‘팀의 서명’과 사회적 기억
벽면과 석재에 남은 팀 명칭과 격려 문구는 건설자들이 집단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졌음을 드러낸다. 이런 비공식 그래피티는 공정 단계별 성과 기록이자, 동료애와 경쟁심이 교차하던 작업 문화의 흔적이다. 더 나아가 이 기록은 왕권의 권위와 장인의 기술이 결합한 국가적 서사를 이어 준다.
한편, 매장지의 치아 마모도, 뼈 스트레스 흔적, 치유痕 분석은 이들이 보호받고 치료받았던 장면을 복원한다. 이는 사후 존엄뿐 아니라 생전 복지가 적절히 제공되었음을 시사한다.
돌을 움직인 기술과 공법의 정밀함
남서부 구역에서 확인된 흙·잡석 램프와 썰매 흔적은 대형 석재 운반의 핵심 해법을 보여 준다. 물을 뿌려 마찰을 줄인 모래 위를 목제 썰매가 지나가고, 도르래 없이도 각 기울기를 최적화한 경사 시스템이 효율을 높였다. 이는 측량 기술, 각도 제어, 현장 공정 관리가 고도로 통합되어야만 가능한 수준이다.
석재는 현장에서 정밀 가공되어, 외장면과 맞춤 결구를 이뤘다. 각 작업반은 채석–가공–운반–정렬로 이어지는 공정을 표준화했고, 오차 허용 범위를 엄격히 관리했다. 그 결과 피라미드는 방위 정렬, 평면 오차, 높이 편차에서 오늘날에도 놀라운 정밀도를 자랑한다.
과학적 영상 기법과 ‘그랜드 보이드’ 탐사
최근 비파괴 영상과 뮤온 토모그래피는 내부에 알려지지 않은 공간 구조를 드러냈다. 2017년에 보고된 ‘그랜드 보이드’는 대갤러리 상부의 대형 공실로, 아직 기능이 규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소형 로봇과 내시경형 센서를 투입해 구조적 역할과 시공 흔적을 검증할 계획이다.
하와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 공간에서 추가 표식과 공정 흔적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건설의 마지막 미스터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입니다.” 이 탐사는 설계 의도와 물류 동선을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신화의 종언, 역사적 주체의 복권
이번 성과는 신화의 베일을 걷고 역사의 주체를 복권한다. 보이지 않던 장인의 얼굴, 조직과 기술의 체계, 생계와 명예가 한데 엮인 국가 프로젝트가 피라미드라는 결과물로 응고되었다. 이제 피라미드는 권력의 상징일 뿐 아니라, 지식과 노동의 집합체로 다시 읽힌다.
결국 이 발견은 고고학과 과학기술, 문헌과 현장이 만나 이뤄낸 합의의 증거다. 남겨진 비문이 말해 주듯, 피라미드를 세운 것은 이름 없는 노예가 아니라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기술, 협업, 상상력이 오늘 우리의 시야를 다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