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심해가 드러낸 역사적 유물
미 해군의 고전적 잠수함이 한 세기 넘게 자취를 감췄던 자리에서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며, 심해 탐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샌디에이고 연안 수심 400미터 부근에서 확인된 USS F-1은 정밀 영상과 다중 센서 장비를 통해 기록되었고, 예상보다 뛰어난 보존 상태를 보여 해양고고학의 귀중한 연구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번 탐사는 WHOI와 미 해군 팀이 연합하여 수행했으며, 자율 무인기와 유인 잠수정을 결합한 전략으로 탐색 효율과 데이터 품질을 극대화했다.
잠수함은 우현 쪽으로 기운 상태로 바닥에 안착해 있으며, 선수는 북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외관상 구조적 디테일이 크게 남아있어 선체 구성, 타워 형태, 외판 손상 등의 정보를 통해 당시 운용 특성과 사고 양상을 추적할 수 있다. 심해의 저온, 저광량, 완만한 침식 환경이 자연 보존고처럼 작용해, 부식 속도를 늦추고 형태 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1917년의 비극,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USS F-1은 1917년 훈련 항해 중 짙은 안개 속에서 동급함 USS F-3와 충돌하는 사고로 순식간에 침몰했다. 당시 22명의 승조원 가운데 19명이 희생되었고, 남은 세 명은 F-3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비극은 초기 디젤-전기 잠수함 운용의 한계, 통신·시계 문제, 편제 항해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이 현장은 전사자 안식처로 지정되어 있어, 연구진은 직접 접촉이나 인양을 피하고 무접촉 기록화 원칙을 준수한다. 이러한 접근은 윤리적 기준과 문화유산 보존의 균형을 맞추며, 후대 연구를 위한 신뢰성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으로 이어진다.
“이 두 도구가 결합될 때 심해 탐사는 전혀 다른 수준의 정밀성과 민첩성을 얻습니다.” — 브루스 스트릭롯(WHOI 알빈 프로그램 리드)
기술이 연 잠수정 고고학의 새 장
탐사의 1단계는 자율 무인잠수정 Sentry가 저고도 그리드로 해역을 훑어 측심·사이드스캔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이었다. 이 탐색 단계는 놀랍게도 첫째 날 오후에 성과를 거뒀고, 곧이어 유인 잠수정 Alvin이 근접 관찰과 광학 영상 채집을 수행했다. 두 플랫폼의 상보성 덕분에 공간 정확도와 시각 증거가 결합된 정합 데이터세트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구축된 자료는 다음과 같다.
- 고해상도 디지털 사진과 광량 보정 영상
- 정밀 소나 모자이크와 지형 음영 모델
- 선체 3D 재구성과 손상 구역 매핑
- 현장 초분해능 지도화 및 좌표 기준점 설정
이 데이터는 타워 형태, 외판 파열, 충돌 각도 등에 대한 가설 검증을 가능하게 하며, 사고의 연쇄 과정을 증거 기반으로 복원한다. 특히 고밀도 포인트클라우드는 강재 변형 패턴을 정밀 분석해, 충돌 에너지와 응력 분포의 역산 모델링을 뒷받침한다.
동시 확인된 그루먼 TBF 어벤저
탐사팀은 잠수함과 더불어 1950년 동일 해역에서 추락한 그루먼 TBF 어벤저의 잔해도 정식 문서화했다. WHOI는 이전부터 이 잔해를 엔지니어링 다이브 대상으로 활용했지만, 미 해군의 공식 위치 기록은 미비했다. 이번에 식별 요소가 명확히 정리되며 NHHC의 공식 등록이 이뤄졌다.
연구진은 엔진 나셀에 새겨진 ‘13’ 표식을 확인했는데, 이는 불운의 상징이 아닌 당시 훈련 비행대의 숫자였다. 확인 결과, 이 사건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고, 승무원은 무사 탈출에 성공했다. 서로 다른 세대의 군사 기술, 30여 년의 간극, 같은 바다라는 공통분모가 현장 아카이브 안에서 입체적 역사를 구성한다.
보존, 배움, 그리고 다음 단계
이번 발견은 기술 진보, 학제 협력, 윤리적 보존이 결합될 때 심해 문화유산이 어떻게 살아난 기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물리적 간섭 최소화, 디지털 전환 극대화, 공개 아카이빙이라는 세 축으로 지속 가능한 연구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 선체 손상 메커니즘과 재료 노화의 장기 모니터링
- 기상·해류 변수와 퇴적 동역학의 통합 모델링
- 교육·전시를 위한 가상현실 및 인터랙티브 지도 제작
- 지역 공동체와의 기억 보존 프로그램 연계
심해는 여전히 어둡고 냉정한 영역이지만, 오늘의 센서 융합, 자율 항법, 실시간 해석은 그 어둠 속에서 사실의 빛을 끌어올린다. USS F-1의 정숙한 선체, TBF 어벤저의 침묵하는 프레임은 우리에게 기술의 책임, 기억의 의무, 그리고 지식의 확장이라는 과제를 던진다. 이 발견은 단지 한 척의 재발견이 아니라, 바다와 인간이 맺어온 세기의 서사를 다시 읽어내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