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아름지기
2020 아름지기 기획전, ‘바닥 디디어 오르다’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2004년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개최해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소통하는 경계, 문’과 2017년 ‘해를 가리다-장막’ 전시를 통해 건축을 이루는 벽과 천장을 탐구한 데 이어, 올해는 건축을 구성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이자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바닥에 주목해 본다.
2020 아름지기 기획전, ‘바닥, 디디어 오르다’는 한국 건축에서 ‘바닥’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탐구해보는 자리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바닥은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특별히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각각의 바닥은 앉고, 서고, 눕고, 일하고, 먹고, 쉬는 각각의 활동에 알맞게, 재료와 형태, 높이 등이 세심하게 조절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흙바닥의 냉기와 습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생활에 적합하게끔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더하는 과정들이, 전통 건축의 다양한 바닥 형태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된다. 전통 파트와 현대 파트다.
전통 파트에서는 한국적 건축의 현대적 실현에 노력하는 온지음 집공방이 네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탑상, 낮은 마루’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2차원적 그림에 묘사된 탑상을 실물로 재현한 작품이다. 고정된 마루의 초기 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유목민적 전통을 가진 고구려인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지금은 낯선 높이의 바닥을 통해 고구려 인들의 삶의 방식까지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통의동 경포대’는 강릉 경포대 내부 바닥의 고저차를 추상적으로 재현한 설치물로, 바닥의 차이를 신체로 체험하고 시선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는, 바닥만으로 이루어진 건축이다.
이 외에도 여러 유형의 온돌을 병치하여 온돌의 변천사를 살펴본 ‘구들, 온기의 확장’, 전통 좌구인 ‘등(凳)-탑(榻)-상(床)’의 개념을 차용해 넓이의 변화에 따라 신체의 적응이 달라지는 이동형 바닥의 의미론적 변화를 살펴본 ‘ㄷ―ㅇ, 등(凳)’을 만나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김현종Atelier KHJ, 서승모사무소효자동, 최종하Jongha Choi Studio 세 명의 작가는 전통 바닥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들며 바닥과 가구의 개념을 재창조하는가 하면, 전통적인 마루의 모티브를 유닛화된 구조물의 집합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건축가 서승모는 익숙한 아파트 내부의 한 부분을 재구성한다. 발코니 확장, 알파룸 등 한국 아파트만의 고유한 편법들을 통해 상실한 소중한 요소와 공간을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의 디렉터인 최윤성은 재단 이사장실을 비우고 바닥만으로 이룬 실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바닥이 반드시 평평해야 하는지, 반드시 높은 입식가구들로만 채워져야 하는지, 이러한 생활이 과연 우리에게 적합하고 편안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바닥을 입체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기능성과 생활패턴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바닥의 다채로운 형태와 쓰임새가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계속된다. 자료제공 / 재단법인 아름지기
전통의 바닥
탑상(榻床), 낮은 마루 _ 온지음 집공방
고구려 안악 3호분(357년) 벽화 속 장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벽화 속 묘주는 지붕이 달린 커다란 평상 위에 올라앉아 있다. 이것을 ‘기단으로부터 분리되어 건축적 개념의 바닥을 구성하는 인위적 바닥의 원형’으로 보고, 이를 통해 당시의 건축 구조, 생활 양식, 신분 체계 등 다양한 사회·문화상을 풀어내 본다.
온돌 같은 난방시설이 보편화 되지 않은 고구려 시대에는 커다란 평상 형태의 가구를 사용해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한기와 습기를 차단하고, 그 위에 휘장을 달아 외풍을 막았다. 온지음 집공방은 이것이 점차 고정화되면서 ‘방’의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에 마루로 발전하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벽화 속 묘주는 넓은 평상 위에 올라앉아 있는데 반해, 주변의 시종이나 낮은 계급 사람들은 서 있거나 너 좁고 낮은 자리에 앉아있다. 이는 지면으로부터 들어 올린 바닥의 높이나 넓이가 사회적 계층과 정체성을 설명해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통의 바닥
구들, 온기의 확장 _ 온지음 집공방
온돌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철기시대이지만, 익숙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다. 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좌식 문화 역시 온돌의 보급으로 정착됐다.
‘구들, 온기의 확장’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온돌 구조를 재현함으로써 ‘따뜻한 바닥’인 온돌의 출현과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전시장에는 초기의 ‘ㄱ자 쪽구들’과 과도기적 단계의 ‘ㄷ자형 구들’, 그리고 가장 익숙한 조선의 ‘온구들’이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여러 종류의 온돌 구조를 체험하며, 온돌의 유형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온돌의 발전 과정과 더불어 ‘입식-입·좌식(혼용)-좌식’ 생활까지, 생각보다 다양했던 우리 선조들의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의 바닥
통의동 경포대, 풍경을 향해 펼쳐진 바닥 _ 온지음 집공방
강릉 경포대는 경포호수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세운 누정이다. 가장 큰 특징은 높이가 다른 네 단의 바닥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인데, 사람의 신체와 시선을 고려해 바닥 단차를 정밀하게 계획한 덕분에 여러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통의동 경포대’는 강릉 경포대처럼 신체와 시선의 높낮이를 고려한 바닥 단차,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위와 교류에 초점을 맞춘 정자다. 전반적인 크기는 전시장인 아름지기 사옥 규모에 맞춰 조정했지만, 마루의 높이는 강릉 경포대의 이상적인 비율을 그대로 살렸다. 또한, 세 번째 마루는 실제 경포대와 달리 부분적으로 지붕을 열어서 더 높이 올라설 수 있다. 온전한 하늘을 즐기고, 한옥의 기와지붕을 내려다보고, 3층 데크 위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등 비일상적 경험이 가능하다.
전통 바닥의 새로운 해석
ㄷㅡㅇ, 등(凳) _ 온지음 집공방 × 최종하
전통 좌구의 여러 유형 중, 개인이 자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인 ‘등(凳)’을 ‘이동식 바닥의 최소 단위’로 설정하고, 단위의 단순한 배치나 배열을 넘어 서로 간에 중첩과 확장이 가능한 모듈 시스템을 제안한다. 공간을 경쟁적으로 점유하는 일반 가구에 반해, 중첩과 변형이 가능한 형태의 이 새로운 모듈은 공간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여준다.
각 모듈은 선재를 반복적으로 나열해 서로 겹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를 통해 앉거나 눕고, 개인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등, 상황에 따라 면적의 변화도 가능하다. 제목 ‘ㄷㅡㅇ, 등(凳)’은 좌구로서의 최소 모듈이 중첩과 확장을 통해 형태와 면적이 변화되는 것을 단어의 분리와 조합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통 바닥의 새로운 해석
De-dimension, TILE・De-dimension, SOBAN _ JONGHA CHOI STUDIO(최종하)
한 사물을 인지하는 여러 감각을 한 작품에서 체험할 수는 없을까? ‘De-dimension’은 2차원 이미지와 3차원 공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한 작업이다.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미지와 3차원 공간에서의 경험을 직관적으로 연결시킨다. 눈으로 바라보는 의자와 우리가 앉는 의자는 서로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는 두 가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의자’라는 하나의 본질적 경험으로 연결시켜 본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거닐고 그림에서 물건을 집어 꺼내어 사용하는 만화 같은 상상이라고 이해해보면 어떨까.
전통 바닥의 새로운 해석
무-경계 _ ATELIER KHJ(김현종)
우리가 늘 발을 딛고 있는 이 바닥은 과연 수평적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밟고 다니는 거리나 산의 지형은 울룩불룩한 곡선의 집약체이며, 건물 안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인간이 만들어 낸 수평적인 바닥을 디디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은 수평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어쩌면 여러 지형적 요소 안에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수평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루’가 가지는 특징인 매개 공간으로서의 연결성과 역할의 다양성, 경계의 모호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고자, 때로는 바닥이 되고 때로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모듈 형식의 오브제를 제안한다. 사용자가 모듈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오브제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될 수 있으며, 그 위에 앉고, 눕고, 찻잔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정해지지 않은 퍼포먼스도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마루의 한 부분이 들어 올려진 형태를 통해 수평적인 바닥에 대한 일반적 사고를 깨어 보기도 한다. 이러한 체험들은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바닥은 경계 없는 쓰임 속에 무한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전통 바닥의 새로운 해석
잃어버린 바닥 _ 사무소효자동(서승모)
주택난 해결을 위해 도입된 ‘국민주택’은 세대당 전용면적 85㎡(약 25.7평) 이하인 주택으로, 취득세와 양도세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원안의 취지와는 달리, 국민주택은 절세 혜택과 발코니 확장을 허하는 건축법과 묘하게 얽히면서 사뭇 기형적으로 발전해왔다. 발코니 확장 전과 후의 평면을 비교해 보면 전용면적은 25.7평이지만 확장 후에는 30여 평이 넘는다. 가용 실내면적은 넓어지고 국민주택으로 인정되어 절세가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사라져가는 발코니를 오늘날 주거 공간 속 잃어버린 바닥으로 보았다.
기본적으로 발코니는 실내이자 실외이기도 한 공간으로, 주택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녹색이 사라져가는 도시 생활에서 전원의 삶을 끌어올 수도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머리를 식힐 수도 있다. 이러한 발코니 바닥이 오늘날 부동산 현황과 맞물려 ‘확장된 거실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이 기회를 빌려 잃어버렸던 바닥인 발코니를 되찾아 보는 건 어떨까. 자연과 바람, 채광을 즐기고 차도 한잔할 수 있는 삶을 누리길 바라며 이런저런 발코니 사용법을 제안한다.
전통 바닥의 새로운 해석
Fully Floored Studio _ 아름지기(최윤성)
바닥이라는 건축 기본 요소를 입체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재고하는 작품이다.
공간 속 여러 높이의 바닥은 각기 다른 넓이, 재질, 구조와 형태를 지님으로써,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진다. 작품 속의 바닥은 단순히 몸을 지탱시켜 주는 전통적이고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수납공간, 의자, 파티션, 소파, 책장 등의 쓰임을 갖게 된다. 다채로운 형태의 바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수평적 공간 구성은, 평평한 바닥의 평면에 여러 가지 높은 가구들이 놓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수직적 구성에 비해 사용 면적이 넓으며, 공간 활용도가 높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들게 한다.
과거의 풀옵션 오피스텔이 ‘Fully Furnished Studio’라면, 입·좌식이 혼용된, 다용도 바닥을 갖춘 이 공간은 ‘Fully Floored Studi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