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은 마치 저마다의 얼굴 같아서,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방울을 햇살 좋은 날에는 밝은 빛을 담아내며, 안과 밖, 그 경계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풍경으로 치환시킨다.
그렇기에 창은 단순히 건축물을 이루는 부속품 중 하나가 아니다. 자연과 사람, 삶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후, 효율성을 이유로 모든 산업에 제품의 규격화가 적용됐고, 건축에서는 특히 창문이 이러한 표준화의 미명하에 희생됐다.
도쿄공업대 스카모토 요시하루 교수와 그의 학생들이 이러한 창의 가능성을 돌아보는 여행을 떠났다. 그간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창의 의미와 기능을 되새겨보기 위해, 전 세계 28개국, 76개 도시, 139개 장소를 탐방한다.
근현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알바 알토부터, 예른 웃손, 루이스 바라간, 제프리 바와, 요제 플레츠니크, 시구르드 레베렌츠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축가의 대표작을 두루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빌라 데스테,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 등의 명소, 런던의 서점, 사라예보의 카페, 아말피의 주택 등의 일상적인 공간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창들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은 그렇게 만난 창문들의 이야기를 모은 창문 보고서이자 창문 여행기이다.
저자는 크게 세 장으로 구분해서 창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먼저 ‘빛과 바람’에서는 빛이 모이고 흩어지는 창, 빛이 가득한 방, 그늘 혹은 바람 속의 창 등의 키워드로, 빛과 바람, 물처럼 자연의 영향을 받는 창문을 소개한다. ‘사람과 함께’에서는 창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상점이나 주변에서 쉼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창문을, ‘교향시’에서는 하나로는 불가능한, 다양한 리듬이나 패턴을 만드는 창문에 주목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례는 들어오는 빛과 바람, 모이는 열기, 그 열기에 이끌려 밖을 바라보는 사람, 그 사람 곁의 사물로 눈길을 향하게 하는 것이 그간 간과했던 창문의 본질임을 환기시켜 준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쯤이면, 창문이야말로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부터 관습, 사회성, 문화적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이전의 단서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