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귀를 막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소리야 귀를 막으면 되지만 보이는 것은 어떤가. 때로는 소리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잡다한 것들로 인해 정신이 어지럽기도 하다. 거리에는 간판, 광고, 공고, 안내문, 표지판, 현수막 등 그 내용이나 형태, 크기, 색상, 재료들도 천차만별인 글자들이 널려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글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보이는 글자가 들리는 소리보다 더 시끄럽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글자는 시각 공해를 유발한다. 하지만 지시, 강요받는 타의에 의한 읽기가 아니라 다르게 상상하는 자의, 임의적인 읽기로 바꾸면 어떤가. 소음을 화음으로 들으면 얼마나 좋은가. 저자는 이런 글자들을 공해라 생각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메시지라 여긴다.
이 책은 에세이다. 저자가 거리에서 발견한 수많은 글자가 모두 주제가 된다. 어떤 가게의 간판 이름이기도, 메뉴판 안의 글자이기도,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기도 하다. 세상 속 글자들의 사진을 찍어 책 한 권에 모았다. 총 140단어마다 다른 이야기와 생각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 장 ‘건물주’에서는 장래희망으로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꼬집는다. ‘공사중’이라는 푯말을 보면서는 상담 중, 대기 중, 휴가 중처럼 현재 진행형인 상황을 나타내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마지막 기회’라는 간판을 보면서는 마지막 하면 떠올랐던 소설이나 시를 소개하기도 한다. ‘민들레’ 단어를 보면서는 오랜 추억 속의 국수 가게를 떠올린다. ‘이곳에 주차 시 경인 조치합니다’에서는 ‘경인’과 관련된 단어 뜻을 죄다 모아본다. ‘50년 전통’을 보면서는 오래된 칼국수 집을 거쳐 간 손님이 얼마나 될지, 그간 쓰인 바지락이 얼마쯤 될지 숫자를 계산해본다.
단어를 보며 떠올린 생각들이 모인 이 책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상상력을 가동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발상의 전환을 해본자.
세상은 언어의 홍수다. 어부가 황금어장을 찾듯, 저자는 간판의 숲을 어장으로 여기니 바로 상상 어장이다. 무수히 많은 물고기 중 하나를 낚았을 때 느끼는 쾌감처럼,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던 말의 풍경에서 맘에 드는 말 하나를 발견할 때의 희열을 이 책에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