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2일 | 히로시
안개 속에서 마주한 뜻밖의 행렬
짙은 안개를 가르던 한 운전자가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낯선 무리를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순간 헤드라이트 앞에 드러난 것은 타스매니아 벤 로몬드 국립공원의 에키드나, 이른바 가시개미핥기, 그리고 보기 드문 행렬이었다. 조용히 숲을 떠나온 작은 몸들이 차분한 걸음, 정확한 간격, 흔들림 없는 방향으로 길을 건너는 장면은 눈을 의심케 할 만큼 비현실적이면서도 경이로웠다.
두 여행자의 조우
현장을 지나던 리처드 월드론과 섀넌 리는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차를 세우고, 숨을 죽이며, 카메라를 들었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일하며 왈라비, 포섬, 웜뱃을 자주 봐 왔지만, 이렇게 여러 마리의 에키드나가 한데 모여 움직이는 장면을 가까이, 선명히, 안전하게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에키드나의 독특한 번식 행렬
에키드나는 평소 외톨이 성향, 완고한 습성, 탁월한 위장색 덕분에 눈에 띄지 않는 동물이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 수컷들이 한 줄로 뒤따르는 ‘번식 행렬’, 이른바 에키드나 트레인,이라는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보통 두세 마리에서 시작해 네다섯 마리, 때로는 더 큰 무리가 형성되며, 선두의 암컷을 중심으로 꾸준한 속도, 낮은 긴장감, 질서정연한 이동이 이어진다.
현장을 담은 한 마디
“도롯가를 건너는 그 작은 등을 보자마자 경외, 감사, 침묵만 남았습니다. 이런 날을 위해 우리가 여행을 하고, 기록을 남기고,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존을 일깨운 지역의 반응
지역의 보호 단체와 관광 당국은 이번 목격담을 반가워하며, 도로에서의 감속, 주의, 배려를 거듭 당부했다. “우리는 이 땅을 야생동물과 함께 쓰는 동반자입니다. 특히 안개, 야간, 산악도로에서는 속도를 낮추고 시야를 넓히는 습관이 생명을 지킵니다.”
운전자들을 위한 즉각 실천 가이드
- 시야가 짧아질 때 속도를 즉시 낮추고, 전조등은 로우빔으로 유지한다.
- 도로 가장자리의 잔움직임, 그림자, 반짝임을 수시로 스캔한다.
-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넓히고, 브레이크는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적용한다.
- 동물을 발견하면 경적보다는 감속과 정지를 우선하고, 방향 전환은 급격하지 않게 한다.
- 동물이 지나가면 추가 개체가 뒤따를 수 있으니 잠시 더 대기한 뒤 출발한다.
작은 몸, 큰 적응의 비밀
에키드나는 가시로 몸을 지키고, 긴 혀로 개미·흰개미를 잡으며, 느린 대사로 에너지를 아낀다. 위험을 감지하면 둥글게 웅크리거나, 땅으로 파고들어, 자연 방패를 만든다. 이 덕분에 소음 많은 도로, 변덕스러운 날씨, 포식자 압박 속에서도 종의 회복탄력성, 적응력, 지속성을 이어간다.
영상이 남긴 파장
두 사람의 기록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 따뜻한 공감, 현실적 조언을 동시에 불러왔다. 댓글들은 “이런 장면은 좀처럼 볼 수 없다”는 감탄과 함께, 운전자들의 책임, 예의, 준비가 더 많은 만남을 가능케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을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배우고, 돌려주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안개가 걷힌 뒤 남은 것
짧은 조우는 속도 대신 서행, 일상 대신 관찰, 성급함 대신 존중을 배웠다는 깨달음을 남겼다. 안개는 사라졌지만, 도로 위의 침착함, 숲 가장자리의 여백, 그리고 생명에게 건네는 한 박자 쉼은 오래 남는다. 다음 길모퉁이에서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우리의 첫 반응이 호기심, 배려, 여유이길 바란다.
작은 기적을 위한 약속
오늘도 타스매니아의 산길에는 햇빛, 바람, 숨소리가 겹친다.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이 가볍고, 조심스럽고, 함께하는 방향을 택한다면, 다음 번 안개 속 행렬도 안전히 길을 건널 것이다. 우리가 지키는 수 초의 정지, 수 미터의 거리, 수 킬로의 감속이 누군가의 한 생, 한 종의 내일, 한 숲의 균형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