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 1970년 1월 27일 김환기의 일기 중에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새 얼굴, ‘관정관’이 지난해 문을 열었다. 1974년 중앙도서관이 완공된 지 40여 년 만이다. 설계는 건축가 유태용테제건축사사무소이 맡았다.
유태용 소장은 관악산 자락에 뿌리내린 서울대학교의 지난 40년을 아우르는 근원적 요소를 ‘빛’이라 보았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이 무수히 많은 점, 선, 면으로 밤하늘의 별빛,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 자연과 우주 등 삼라만상과 인생의 철학을 담아내었다면, 건축가 유태용은 건물을 캔버스 삼아 선을 긋고 면을 만들어 관악산의 풍광을, 고뇌하는 청춘의 얼굴을 새겼다. 수 십 년간 이곳을 지나간, 그리고 앞으로 지나갈 수많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희로애락, 시시각각 변하는 캠퍼스의 빛과 색을 담아내는 표상으로서의 관정관을 완성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서울대학교는 1946년 동숭동에서 개교했다. 그러나 점차 대학이 확대되면서 각지에 흩어져 있던 캠퍼스를 통합할 필요성을 느껴, 1970년 관악구 신림동 일대를 서울대학교의 새 부지로 발표한 뒤 캠퍼스 조성에 착수했고,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전을 시작했다.
1971년 말 완성된 캠퍼스 종합계획을 살펴보면,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이 캠퍼스 중심에, 교내 건물들은 중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다.
1974년 3월 완공된 중앙도서관은 높이 6층, 총면적 30,506m2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약 4천 석의 열람석과 150만 권의 장서를 보존할 수 있는 서고 및 기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건축물은 40년 이상 경과 시 노후 건축물로 분류되니, 건물은 이미 노년에 접어든 셈이다. 게다가 1996년을 기점으로 중앙도서관 장서는 한계치인 150만 권을 넘어섰고, 해마다 약 10만 권이 증가하고 있어 장서 수장 능력도 상실한 터였다. 무엇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도서관에는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졌다. 특히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온라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멀티미디어 활용 공간을 비롯하여 휴식 및 단체 교육 공간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에 서울대학교는 디지털 기반의 도서관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10년, ‘중앙도서관 신축 설계 방안 연구’를 수행했다. 2012년 3월에는 도서관 신축과 리모델링을 위한 1,000억 원의 기금 목표액을 설정하고 ‘서울대 도서관 친구들’ 모금 캠페인을 추진했다. 동문, 교수, 직원, 학생, 학부모에서 외부인사까지 약 860여 명이 모금에 동참했지만, 목표 금액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러던 2012년 6월,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서 600억 원의 건립 기금을 기부하면서 도서관 건립은 급물살을 탔다. 이종환 회장은 삼영화학그룹의 창업주로 평소 인재 육성과 대학 발전에 앞장서며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인물이다. 2000년에는 사재 8,000억 원을 출연해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서울대학교는 도서관 건립 계획에 박차를 가해 설계자인 테제건축사사무소, 교내 건립 및 설계추진위원회와 함께 세부 계획을 완성해 갔다. 2012년 6월부터 설계와 내부 협의를 거쳐 2013년 1월 관악구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았으며, 5월 시공사로 (주)대우건설을 선정하고, 5월 29일 기공식을 가졌다. 1년 9개월여 간의 공사 끝에 2015년 2월 관정관이 완공되면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국내 대학도서관 중 최대 규모(57,751m2)를 자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