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영동 쪽에 땅을 보고 있는데 같이 반지 좀 돌리죠.”라는 대사가 나오는 영화가 있다. ‘1970년대 욕망이 춤추는 땅, 강남’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운 <강남 1970>이다. 영화에서는 당시 남서울로 불렸던 지금의 서초, 강남 일대 개발계획인 ‘남서울개발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눈치 빠른 돈 많은 사람이 땅을 사들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논밭, 과수원, 뽕밭이었던 일대에 부동산 개발 광풍의 주역인 ‘떴다방’이 생기고 ‘복부인’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민마담(예지원 분) 역시 많은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종대(이민호 분)와 함께 복부인 대열에 합류했다. ‘반지를 돌리자’는 민마담의 대사는 구입한 땅의 가격이 많이 오르면 소개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금반지를 준데서 비롯한 말이다. 종대는 민마담을 도운 대가로 일대 미나리 밭을 받는다. 1978년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땅값이 엄청 오를 것으로 예견한 엄마에 이끌려 강남으로 이사한 현수(권상우 분)가 전학 간 학교에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역시 천정부지로 오르는 강남의 땅값 이야기가 나온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영화에서 살짝 보여 준 강남 개발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영등포구였지만 동작구에 편입되었다가 지금은 명실공히 강남의 한복판이라 불리는 서초구 반포동도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서울의 남쪽 ‘남서울’이었다.
‘영동’지역 개발이 결정되면서부터 ‘남서울’은 ‘영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영동은 영등포 동쪽 동네라서 붙은 명칭이다. 1966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공사가 시작되면서 농촌이었던 영동 일대의 땅값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압구정동과 신사동 일대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는데 1963년 평당 300~400원이었던 땅값이 평당 15,000원이 되었다. 이때의 투기 붐을 소위 ‘말죽거리 신화’라 일컫는다. <강남 1970>의 무대와 상황을 자료와 기록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밀도 있게 확인해 준다.
책은 집이나 방을 찾는 사람에게 맞춤한 물건을 소개하고 약간의 소개비를 받던 복덕방이 언제부터 전문적인 부동산중개업으로 변화되었는지 요즈음 젊은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직방’과 같은 부동산 앱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또한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민마담을 포함한 복부인들이 뻔질나게 건너던 제3한강교는 유사시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건너가기 위해 만든 다리이다. 당시 유사시를 대비해 만든 시설물이 여럿 있다. 1968년 1·21사태를 계기로 ‘관광과 교통 편익을 도모하는 한편, 유사시에는 수도방위에 역할을 할 수 있는 개념’으로 건설한 북악스카이웨이. 북악스카이웨이 준공식 날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 “남산 기슭 두 곳에 터널을 뚫어 남북이 군사적으로 갈등하는 상황이 닥치면 한쪽에 보병 1개 사단을 주둔시키고 다른 방향으로는 기갑사단을 안전하게 대기시켰다가 군사적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요새로 만들자”는 지시에 따라 바로 공사를 시작한 남산 1, 2호 터널.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을 만들어 넣은 한강변의 아파트. 대전차 방어구축물로서 홍은동 유진상가, 구파발과 도봉동 일대에 지은 아파트.
책에서는 “복덕방에서 직방으로, 다시 직칸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 강남과 아파트에 관한 잡설”, “서울 요새화와 ‘싸우면서 건설하자’”라는 제목의 꼭지로 나누어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들을 한데 엮어 차분히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1960~70년대 서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이 살던 집은 ‘불란서식 미니 2층’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양에 대한, 문화 선진국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이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온전한 2층으로 보기에는 작아 ‘미니’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집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문화주택에서 유래했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별을 보겠다고 올라가 앉은 장독대 이야기도 나온다. 한때 장독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장독 없애기 홍보영화까지 만들어 배포했으며 와우아파트가 붕괴하였을 때는 붕괴 주원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장독대를 아파트 안으로 어떻게 들일지 고민한 흔적 또한 당시 기록을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 왜 유독 다용도실이 발달했었고 지금은 소멸하고 있는지, 입주자 마음대로 자유롭게 확장해 사용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발코니 이야기, 집안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더스트 슈트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기까지의 과정 등 우리 집과 관련된 많은 사실을 빠트리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박물지’라는 제목에 걸맞게 지난 100년 우리 주거문화의 요모조모를 밀도 있게 풀어낸다. 변화 과정을 추적하기도 하고, 그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잘못된 법령에 의해 원래 의미를 잃은 주거의 형태를 차갑게 비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