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밌다. 제목에서 풍기는 조금은 무거운 첫인상과는 달리, 손에 쥔 책은 술술 읽혔다.
이 책은 저자의 독일 유학시절이던 1986년, 지도 교수였던 하노버대학교 건축학과의 란트체텔 교수와 함께 한국의 전통건축을 둘러보며 교수가 직접 찍은 사진과 그에 덧붙인 저자의 글로 이루어진다.
서울 청암동, 경복궁, 종묘, 창덕궁, 양동마을, 하회마을 등을 돌아보며 24시간 밀착 동행했던 무려 28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생생하게 그려 내는 198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았던, 아니 그 시대를 모르는 이들까지 추억여행으로 초대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요즘 세대들에겐 생소할 한국의 1980년대 모습이 담긴 사진과 더불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오늘날의 모습을 나란히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는 전통 건축, 한국적인 것에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때론 너무 지나친 의미를 두기도 한다. 저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꽤 오랜 기간을 고민하며 씨름했다고 전한다.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 전통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무게에 눌려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했던 경험.
란트체텔 교수는 한국적 특성에 먼저 집중하기보다 인상적인 장면에 더 관심을 두었다. 저자는 되짚어 보니 란트체텔 교수와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한국의 인상적인 것들에 대한 그저 평범하고 쉬운 내용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경관을 제대로 보고,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길잡이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멀리서 찾아든다.’는 란트체텔 교수의 평소 지론이다. 경관으로 다가갈 때, 곧장 목적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천천히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를 조망하며 찾아들고, 멀리서부터 보이는 마을 경관, 마을로 접근해 오는 동안의 시간, 마을의 진입 공간 등 여러 각도에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이 책은 저자와 란트체텔 교수의 관계를 넘어 우리 전통 건축과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객관적 시선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우리의 일상과 조선 시대부터 있어 온 우리의 전통 경관에 현재 우리 모습을 겹쳐 보이며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우리 전통 건축이 무엇인지, 우리 전통 건축은 어떤 것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바르게 보고, 보이는 것 이상으로 풍성히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망설임없이 이 책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