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현실이다. 정해진 땅이 있고, 그 위에 벽을 세운 뒤 지붕을 덮어야 한다. 가구를 놓아야 하고 불도 켜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 분명 그 모든 과정은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현실에서 멀어질수록 좋다. 새로운 상상력을 가미하여 건축의 고착화 된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 그 자체로 더욱 흥미로운 건물,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사용자에게도 더욱 매력적인 경험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상상력으로 무장한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전통과 혁신의 경계에서 다양한 실험을 장려하기로 유명한 영국 최초의 건축대학, 바틀렛의 국내 첫 동문전이었다. 모든 작업의 초점이 ‘되는 것’을 만드는 데만 맞춰져 있는 우리 건축계에 ‘새로운 것’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던 그 전시를 책으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만으로 채워졌던 지난 전시의 아쉬움은 풍성한 텍스트로 보완해, 우리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건축과 이어질 수 있는지를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한다.
소개된 스물다섯 개의 작업은 주제도, 접근법도, 이를 다루는 툴도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소설이고, 어떤 것은 영화 시놉시스이며, 또 어떤 것은 일종의 실험보고서나 다큐멘터리, 심지어 개인의 기록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흔히 생각했던 건축 작업과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건축에 접근하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기존 건축관의 단단한 외벽을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자연을 건축 일부로 들여오거나, 기술을 건축의 도구로 활용하거나, 재료를 실험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자체가 건축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낯설지만 신선한 이 작업들은 미래, 현재, 과거, 세 개의 챕터로 나뉜다.
‘미래’에서는 물 부족, 경제 위기, 사이버 공간의 증식에 당면한 인간과 공간의 모습을 다루며, ‘현재’에서는 설치 미술, 영화, 문학 등 다른 장르를 활용한 실험을 통해 건축이 각각의 분야 안에서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확인한다. 또한, ‘과거’에서는 추사 김정희, 프로이트 등 과거의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예술 언어를 건축 언어로 구현시킨다.
이렇듯 이 책은 상상으로만 채워진 공상집이 아니다. 세상 거의 모든 것에서 키워드를 찾고, 이를 중심으로 만든 스토리를 동력삼아 짓는 건축이다.
상상의 현실화를 위한 그 치밀한 노력과 연구의 흔적을 함께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