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조성룡에게는 으레 따라붙는 몇몇 수식어가 있다. 사람, 도시, 사회, 땅, 공공성 등 건축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명확한 정답은 없는, 그래서 종종 놓치기 일쑤인 주제들이다.
하지만 조성룡은 우리 건축이 놓친 채 흘려보냈던 이 주제들을 평생에 걸쳐 붙잡고 고민하며 탐구해 왔다.
지난 사십여 년간 그가 이러한 가치에 천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에서 찾을 수 있을듯하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 그 땅 위에 세워진 건축,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펼쳐지는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수류산방에서 출간된 ‘건축과 풍화’는 바로 그 생각들을 모은 책이다.
건축가 조성룡의 이름으로 출간된 첫 책이지만, 난해한 비평으로 가득한 작가론도, 그렇다고 사진과 도면으로 채워진 작품집도 아니다. 자신이 설계했던 작업을 직접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니 어쩌면 수필집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작가의 구술을 토대로 정리된 글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떼지만, 어느샌가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사회, 역사, 경제, 정치, 예술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들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가 다시 모이는 지점은 역시나 사람이다.
책은 총 아홉 장으로 구성된다. 편집자가 바라본 조성룡의 건축 세계를 정리한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모든 장은 자신의 대표작을 주제로 직접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국내 최초로 국제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지어진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송파 지역의 유일한 공공미술 공간인 ‘소마미술관’, 국제 지명현상설계에서 2위로 낙선한 ‘서울역 고가활용 프로젝트’, 우리나라 최초의 초고층 아파트인 ‘상계동 주공 아파트 4단지’, 구릉지에 적합한 재개발 정비 모델을 연구한 ‘이화마을 프로젝트’ 등으로, 건축가의 미학적 표현이 드러나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누구나 직면하는 도시 주거와 생활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영웅적인 건축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땅 속에 새겨진 것들을, 흙과 바람이 되어버린 것들을 고민하고 고심한 결과물들이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자세이고, 어떤 마음이며, 어떤 문화일까. 그가 들려주는 삶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알게 모르게 놓쳐버렸던 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