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이 30대 부부가 동해 어촌에서 새로 시작한 일상이 화제다

2026년 06월 05일

「대기업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이 30대 부부가 동해 어촌에서 새로 시작한 일상이 화제다

도시에 남은 짐을 비우는 데는 하루면 됐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데는 훨씬 오래 걸렸다. 서랍 속 사원증을 마지막으로 반납한 날, 이 부부는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 너머로 갈매기가 스쳐 갔고, 바다는 속삭이듯 “천천히 살아보라”고 말했다.

결심의 무게와 가벼움

서른 중반, 그들은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했다. 남편 선호는 전자 대기업의 제품기획자였다. 아내 민주는 금융 계열사 인사팀에서 성과를 재단하던 사람. “야근 뒤 형광등 불빛이 몸을 파먹는 기분이었어요.” 민주가 웃으며 말했다. 선호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숨은 언제 쉬나 싶었죠”라고 했다.

그들에게 강릉은 휴양지가 아니라, 배움을 다시 시작할 교실이었다. 도시의 속도를 내려놓고,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일.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바닷물의 냄새를 배우고 싶었어요.”

주문진 새벽, 일의 리듬을 다시 배우다

새벽 네 시, 그들은 주문진항 경매장으로 향한다. 비린내와 소금기가 섞인 공기, 빠르게 오가는 손짓과 숫자. 처음엔 발만 동동 굴렀다. 이제는 고등어의 눈빛, 오징어의 촉수 탄력으로 신선도를 가늠한다.

민주는 네오프렌 장갑을 끼고 손질을 배웠다. 손끝에 남는 감각이 하루의 자신감을 올린다. 선호는 해양레저 조종면허를 땄다. 작은 보트를 몰고 나가 부표를 점검하고, 돌아와 소형 냉연실을 정리한다. “첫 겨울엔 바람이 칼 같았죠. 그런데 그 칼끝이 을 스치며,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어요.”

오래된 어창을 동네 살롱으로

부둣가에 빈 어창 하나를 빌렸다. 낡은 목재벽을 샌딩하고, 소금 먹은 경첩을 갈아 끼웠다. 간판은 ‘물결살롱’. 오전엔 건어 작업장, 오후엔 커피와 작은 전시가 공존한다. 저녁엔 동네 영화 상영회가 열린다. “여기선 직함 대신 바람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요.” 이웃 어부는 그들을 ‘남동풍’이라고 부른다. 자주 문을 열어 두니, 발걸음이 스스로 들고 난다.

그들은 직접 손질한 청어와 도루묵으로 소금 숙성 레시피를 만들었다. 포장지는 종이와 천끈. “바다에서 빌린 것은 가능한 한 바다로 돌려보내자”가 원칙이다. 짠맛은 줄이고, 바람과 그늘로 을 더한다. 지방의 묵직함이 말끔하게 빠지는 그 순간을 ‘사라지는 파도’라 부른다.

숫자보다 손맛, 브랜드보다 바람

매출은 분기 보고서 대신 괄호 속 메모로 기록한다. “이번 주는 사흘은 거친 파도, 이틀은 잔잔. 그러니 예약은 조금 덜기.” 그런 방식이 신기하게도 맞아떨어진다. 온라인으로는 적당히, 오프라인에서 충분히. SNS에는 바다 소리와 손의 느림만 올린다. 어느 날 짧은 영상이 퍼졌고, “도시를 떠나 이렇게 살 수 있구나”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그들에겐 바람 한 줄기였지만, 누군가에겐 나침반이 되었다.

바닷마을이 준 질문들

바다는 답을 문장으로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겹겹이 남긴다.

  • 오늘의 속도는 누구의 것인가, 내 몸의 호흡과 맞나

“우린 이제 피곤함을 자랑하지 않아요.” 선호가 말한다. 민주가 덧붙인다. “빨리보다 분명히, 많이보다 지속이 좋아요.”

관계의 온도, 겨울의 연습

겨울이면 손님이 줄고, 바람은 더 세진다. 그때 동네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운다. 대게철에 흘러넘치는 껍데기는 비료가 되고, 그 비료로 키운 채소가 에 돌아온다. 그들이 만든 어간장 한 병은 홀로 사는 할머니의 저녁상을 짭짤하게 한다. “갚을 수 없으면 나누면 되지.” 어부 박씨의 말투는 거칠지만, 배려는 섬세하다.

여행자의 자리, 주민의 책임

주말엔 작은 해돋이 산책을 연다. 숙련된 가이드가 아니라, 산책 친구처럼 걷는다. 모래의 결, 파도 여백, 플라스틱 조각의 불청객까지 함께 본다. “멋진 사진 대신, 한 줌의 쓰레기를 가져가요.” 그들의 안내문은 간단하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도시로 돌아가냐는 물음에

누군가 묻는다. “언제 돌아갈 건가요?” 그들은 잠시 생각한다. 돌아감은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위치라고. “여기서도 야근은 있어요. 다만 밤을 깨우는 건 알람이 아니라 파도죠.” 민주는 그렇게 말한다. 선호는 덧붙인다. “우리는 아직도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누구의 성과표에도 이름을 얹지 않을 .”

해가 기울면 그들은 어창 문을 닫고, 남은 비늘을 쓸어낸다. 손에 밴 소금기가 살짝, 컵의 커피와 뒤섞인다. 오늘의 목록은 짧고, 내일의 계획은 가볍다. 바다는 늘 같은 듯 다르고, 그 다름이 삶을 새로 만든다.

“행복해요?” 누가 또 물었다. 둘은 잠시 눈을 맞춘 뒤 웃었다. “정답은 모르지만, 대답은 매일 쓰고 있어요.” 그리고 파도는 변함없이 밀려와, 발등을 살짝 적신다.

김 지훈

김 지훈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을 담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다양한 도시에서 경험을 쌓으며 건축 저널리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C3KOREA에서는 건축 비평과 인터뷰를 주로 담당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세계 건축의 맥락을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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