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윤, 박길룡, 이재성 지음 / 22,000원 / 도서출판 디 발행 / 문의_032.216.7145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 중앙에는 한라산을, 그 주변에는 360여 개의 오름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화산섬. 그 특유의 매력적 풍광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된 아름다운 섬, 제주도.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천혜의 자연을 만나러 제주로 떠난다. 그래서일까. 서점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 여행 책자만 해도 어림잡아 수십 권이다. 보기 좋은 풍경, 걷기 좋은 코스, 묵기 좋은 숙소, 맛 좋은 음식점까지,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놓인 조금은 독특한 가이드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주의 현대건축을 찾아가 보길 권하는 건축 가이드북이다. 그런데 제목은 제주체. 건축이라는 단어는 책 모퉁이에만 작게 적혀있을 뿐이라, 얼핏 봐서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보면, 이 책의 제목이 이러해야 했던 이유를 곧 깨닫게 된다. 한동안 닫혀 있던 제주의 현대건축물들을 샅샅이 훑어보면서, 제주 문화 경관의 체질을, 그리고 제주 건축의 체질을 누구보다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십 채의 건물, 네 개의 주제, 아홉 개의 탐침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에는 총 40개의 제주 현대건축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리카르도 레고레타, 승효상, 정기용, 조민석 등 하나같이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역작들이다.
저자는 기능도 규모도 지어진 시기도 제각각인 이 건물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크게 네 개의 챕터를 제안한다. 전통, 사회, 자연, 문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 하에 다시 한 번 작품들을 세분화하면, 40개의 건물이 말하려 했던 주제는 결국 아홉 가지 키워드로 수렴된다. 전통의 시형식, 옴팡의 기억, 도시건축의 윤리, 제주가 기억하려는 것, IT와 건축, 자연과 건축, 아열대 건축, 풍광의 건축, 현상으로서의 건축이다.
이제 이 아홉 개의 키워드를 따라 탐침을 시작해보자. 쉬운 에세이와 풍부하게 삽입된 사진을 따라 탐침을 거듭할수록, 아홉 가지 키워드는 바로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는 것을, 혹은 그 건축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어휘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의 예리한 안목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견한 제주 건축의 요체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제주의 풍광이다. 저자는 바람의 결, 돌의 물성, 빛의 구조 등, 건축은 섬이 갖고 있는 특별한 풍광과 교섭하며 그 자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제주의 고유한 유전자가 건강하게 발현된 작품, 혹은 외래 문물과 만나 새로운 문화적 풍경으로 진화해 온 40개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다닌다. 직접 밟아보고 둘러보고 만져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제주다운 건축에서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를 내다본다. 제주 건축을 건강하게 지켜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역 건축가, 외부 평론가, 건축 사진가, 그들의 세 가지 시선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봤기에 제주의 건축을 누구보다 잘 들여다보는 지역건축가. 그러나 너무 가깝기에 등잔 밑을 놓칠 수 있는 그 시선을 바로 잡아줄 외부평론가. 글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을 시각적 사실로 증언하는 사진작가. 이 책에는 이 세 명의 서로 다른 시각이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이 조율되어 있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되, 평론보다는 객관적 사실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글은 건축을 대중의 곁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렇게 건축은 더이상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며 제주를 찾는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기고 누려야 할 유산이라고 얘기한다.
글 중간중간 등장하는 사진들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사진은 저자 중 한 명인 건축사진작가가 약 십여 년에 걸쳐 직접 찍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제주의 풍광과 어우러진 건축물의 속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동시에, 그 건축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얽혀있다. 그렇게 사진은 건축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제주로 떠나보자. 그리고 그간 보지 못했던 제주 문화의, 제주건축의 체질을 찾아가 보자.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도 좋고, 어떤 탐침을 시도해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이 책과 함께하는 여행은 아마 자연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과는 또 다른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